멀리 있는 사물을 가리키는 지시대명사 혹은 ‘저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삼인칭 대명사. 정치권에 느닷없이 ‘저거’가 입길에 올랐다.

국민의힘 ‘경선버스’가 8월 말 출발하기도 전인 18일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인 ‘저거’의 진앙지는 이준석 대표다. 17일 밤 대선후보인 원희룡 전 제주지사와 전화통화에서 “저거 곧 정리된다”는 말을 했고, 이에 대한 해석이 ‘윤석열’이냐 ‘당내 갈등’이냐를 두고 진실공방이 벌어지는 중이다.

통화 내역을 폭로한 원 전 지사는 "(윤석열 캠프) 내부회의 내용이나 안좋은 이야기들은 자기가 보고를 다 받고 있고, 여의도연구원 여론조사도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튼 저건 곧 정리된다는 것"이라며 "당연히 저거라는 것은 윤석열 후보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반면 이 대표는 “윤 전 총장이 아닌 경선 과정의 갈등이 정리된다는 취지였다”고 반박했다. 이어 통화 녹취록 일부를 공개하며 원 전 지사에 대해 “그냥 딱합니다”라고 비아냥댔다. 이에 원 전 지사는 전체 녹음파일을 내놓으라며 압박수위를 높인 뒤 성사되지 않자 “잘못을 인정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대선 경선 토론회를 둘러싼 내홍이 절충안 합의로 가까스로 봉합되기 무섭게 ‘당 대표의 불공정 경선 관리’를 고리로 파문이 터진 셈이다. 국민의힘은 당장 ‘친이’ 대 ‘반이’로 갈리며 내부 경고음과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정치인간 사적 대화를 상대에게 밝히지도 않은 채 일일이 녹음하고, 심지어 이런저런 형태로 외부 유출하는 것은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로 여겨질 법하다. 더욱이 원 전 지사의 주장처럼 당의 유력 대선 후보를 정리 대상인 ‘저거’라고 지칭했다면, 대선주자-당대표간 전례없는 폭로전 양상을 보노라면 막장드라마가 따로 없다. 

윤석열 전 총장이 국민의힘에 입당하기 전부터 이준석 대표의 압박은 만만치 않았다. 틈틈이 당근을 꺼내 들었다. 대표적인 레토릭이 ‘비단주머니 3개’였다. 윤 전 총장의 ‘이준석 패싱’ 기습 입당 이후 두 사람의 갈등은 경준위 주최 토론회에 이르기까지 정점을 향해 치달았다.

이면을 살펴보면 노선투쟁이다. 이 대표는 2030의 지지를 얻고 있는 자신이 대표인 당을 중심으로 ‘1일 1구설’ 후보 리스크를 줄여버리거나 이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리셋한다는 입장으로 보인다. 윤 후보에게 흔든 비단주머니이자 낭중지추였던 셈이다. 반면 윤 전 총장은 야권 1위 지지율 후보인 자신을 중심으로 경선 레이스를 펼치겠으니 당(이준석)은 조력자 역할만 하라는 기세다.

정권 창출을 위해 대선후보를 돋보이게 만들고 공정한 경선관리를 하는 것이 당 대표의 역할이다. 국가를 경영할 철학과 정책을 제시하는 것이 대선주자의 임무다. 과연 ‘투스톤’은 이를 성실하게 이행하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스스로에 대한 과대평가와 근자감이 눈에 더 밟힌다. 이런 일련의 상황이 코미디 같으니 일각의 표현대로 ‘봉숭아학당’이 절로 연상된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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