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얼굴을 마주한 충무로 대표 연기파 배우 곽도원(44)은 푸근하고도 시원시원한 사람이었다. ‘변호인’ ‘범죄와의 전쟁’ 등 무수한 영화 속에서 선보여 왔던 냉철하면서 무서운 인상은 그의 너털웃음으로 단박에 사라졌다. 참으로 좋은 사람이란 느낌이었다.

 

개봉 5일 만에 200만 관객을 목전에 두며 흥행 독주체제를 갖춘 ‘강철비’(감독 양우석)는 북한에서 쿠데타가 발생하고, 남북한이 최악의 전쟁 위기에 빠지게 되는 블록버스터 무비다. 영화 속에서 곽도원은 남한의 외교안보수석 곽철우 역을 맡아, 북한의 특수요원 엄철우(정우성)와 특급 케미스트리를 과시한다. 과거 필모그래피와 다른 따스한 연기로 관객들의 마음을 녹인다.
 

영화 속 곽철우는 엄철우에게 “빨갱이”라는 말을 달고 산다. 과거 ‘변호인’에서 무고한 이들을 “빨갱이”라 부르며 고문을 가했던 차동영 경감의 모습이 겹치는 대사다. 하지만 이번엔 그 누구보다 평화를 원하고, 무고한 국민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연기 변신을 시도했다.

“‘변호인’ 촬영할 당시엔 무시무시한 감정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강철비’ 속 곽철우는 지금까지 했던 그 어떤 역할보다 제일 인간 곽병규(곽도원의 본명)와 가장 가까워요. 술 마시고 아는 형에게 주접떠는 거나, 차 안에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싱크로율 100%죠.(웃음) 배우 곽도원으로 살면서 감추고 살던 여러 면모를 영화에서 해소한 것 같아요.”

  

물론 고충이 없었던 건 아니다. 감정적으로는 캐릭터에 동화 됐지만, 영어에 중국어까지 능통한 ‘뇌섹남’ 곽철우를 연기하는 데 여간 애를 먹은 게 아니다.

“언뜻 가벼운 사람으로 보이지만, 외교안보수석이라는 직책에 걸맞은 권위도 있어야 하고, 옥스퍼드 대학 출신에, 중국어도 할 줄 알고... 참 힘든 캐릭터지요. 촬영 당시에 꿈을 하나 꿨는데, 연기하다가 대사를 까먹어서 제가 막 울더라고요. 연기 생활 26년 만에 처음 꿨어요.(웃음) 그 뒤로 머리맡에 대본 두고 수시로 자다 깨서 읽고 외우고 했어요. 그런데 심지어 영국 발음이야! 우리가 강대국이 되면 이런 고생할 필요 없이, 외국 배우들이 우리 말로 연기를 할 텐데. 아쉽네요.(웃음)”
 

곽도원은 꾸준한 연기활동으로 찬사를 받고 있다. 지금의 위치에 만족할 법 한데도 불구하고 늘 연기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며 치열하게 살고 있다고 전했다. 변화가 없다는 항간의 비판과 늘 주어지는 역할이 비슷비슷한 것 같다는 개인적 고민이 겹쳐 어깨에 짐처럼 얹혀 있는 듯 보였다.

“아재(?) 느낌의 연기, 또 검사 경찰 정치인 같은 캐릭터로 세상에 알려지다 보니까, 그런 배역이 자주 들어와요. 늘 변화를 주려고 노력해요. 바꾸고 싶은데 한계가 느껴져요. 죽을 듯 연기해도 늘 부족한 것 같아요. 사실 배우들도 자기가 비슷한 연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어요. 그런데 벗어나는 게 참 힘든 일이거든요. 곽도원이라는 배우 내면의 깊이를 키울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늘 노력하고 발전하려 시도하는 게 배우의 미덕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곽도원은 남북관계, 핵, 전쟁 등등 다소 민감한 소재를 담고 있는 ‘강철비’를 촬영하면서 통일에 대한 생각을 품게 됐다고 조심스레 이야기했다.

“대학 강연하는 신에서 제가 ‘대한민국 남해에서 캠핑카를 타고 평양, 백두산을 지나 유라시아까지 가는 걸 상상해보자’는 대사를 넣자고 감독님께 말씀을 드려서 촬영도 했었어요. 대본을 읽다보니 문득 통일이 되면 그런 멋진 여행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더 통일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아쉽게도 편집과정에서 빠졌지만요. 정말 어서 통일이 돼서 아픈 북한 분들이 이국종 선생님 같은 분을 만나서 치료도 받고, 우리도 북한 땅으로 여행도 가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강철비’는 ‘변호인’ 이후 약 5년 만에 양우석 감독과의 협업이다. 양 감독이 생초짜였던 시절부터 1000만 감독이 된 후를 봤고, 그리고 두 번째 작품까지 같이하면서 점점 그에 대한 신뢰가 깊어져 간다고 수줍게 고백했다.

“감독님이 정말 똑똑하셔요. 시나리오를 받고서 본인의 생각을 쫙 풀어주시는 데 감탄을 금할 수 없었죠. 그런데 현장에서 연기는 좀 그만하셨으면 좋겠어요. 내 대사를 외우셔서 막 연기를 하시는데, 너무 자주하시니까 신경이 쓰이더라고요.(웃음) 물론 순수하게 열정이 있으셔서 하시는 거죠. 맑은 사람이면서 또 강하고, 겸손하면서 또 철두철미한 분이에요.”

 

‘강철비’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역시나 곽도원과 정우성, 두 동갑내기 배우의 유쾌발랄한 케미스트리다. 충무로 대표 연기파로 손꼽히는 곽도원이지만, 그는 “정우성은 참 배울 점이 많은 친구”라며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연기에 대한 극찬도 덧붙였다.

“(정)우성이는 정말 죽을만큼 힘줘 연기하는 친구예요. 그 정도 경력이면 한계를 정해두고 ‘이 정도면 됐겠지’하는데, 그는 한계를 두지 않아요. 요령을 안 피운다고 할까요. 특히 ‘아수라’ 찍을 때는 소위 개싸움 액션을 정말 몸을 아끼지 않고 하더라고요. 거기에 눈빛은 또 어찌나 깊은지. 차 안에서 감정을 나누는 신이 있었는데, 그 눈을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울컥하더라고요. 정말 고수예요. 고수.”
 

마지막으로 곽도원은 ‘강철비’를 관람한, 또 관람할 팬들에게 진지한 당부의 말을 남겼다.

“이 영화를 봐주시는 많은 분들에게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그리고 SNS상에서 ‘강철비’가 왜 재미있는지에 대한 논쟁도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실제로 일어날 법한 이야기니까, 결말에 대한 본인의 의견을 가감 없이 토론해주시면 재밌을 것 같아요. 관객분들이 어떤 이야기를 나누실지 무척 궁금해요.”

 

사진제공=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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