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풍파를 맞다보면 닳기도 하지만 때론 더욱 단단해진다. '몬테크리스토'가 그렇다. 19세기 소설을 바탕으로 한 뮤지컬이 국내서 선보여진지도 어언 10년. 5번의 시즌을 거치며 다져진만큼 꽉차고 응집된 에너지를 뿜는다.

'몬테크리스토'는 알렉상드르 뒤마의 장편소설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원작으로 한다. 억울한 누명으로 14년간 옥살이를 한 선원 에드몬드 단테스가 탈출 후 몬테크리스토 백작으로 변신, 고통을 안겨준 이들에게 복수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복수를 위해 달라진 모습으로 돌아온다는 설정. 얼굴에 점 하나 찍고 돌아오는 것처럼 흔히 '막장 드라마'에 나오는 소재의 시초격이다. 하지만 전혀 막장이라 느껴지지는 않는다. 에드몬드의 불타는 복수심과 처절한 절규가 전해지니 그 속에서 느껴지는 공감과 카타르시스가 크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선제 조건은 몬테크리스토 역을 맡은 배우의 힘. 스토리상 다른 작품들에 비해 주인공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욱 크다. 지난 2016년 이후 4년만에 돌아온 카이는 한층 묵직해졌다. 팬들로부터 흔히 '지옥송'이라 불리는 1막 마지막 넘버 '너희에게 선사하는 지옥'은 극의 하이라이트다. 앞선 시즌 공연들에서도 가장 많이 사랑받아온 곡이다.

몬테크리스토로 돌아온 에드몬드가 자신에게 시련을 안겨준 이들에게 복수를 다짐하는 내용이다. 그만큼 그가 느끼는 복수에 대한 극렬한 분노가 불을 뿜어야 한다. 광기어린 표정으로 내지르는 카이의 마지막 "아멘"에서는 절로 전율이 인다. 

프랭크 와일드혼이 작곡한 '몬테크리스토' 넘버들은 귀에 착착 감긴다. '너희에게 선사하는 지옥' 뿐 아니라 '과거의 내 모습' '언제나 그대 곁에' 등 발라드, 클래식, 록사운드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듣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뮤지컬에서 넘버를 중요시 여기는 관객들에겐 더 없이 좋은 작품이다.

그렇다고 비주얼적 요소가 부족한 건 아니다. 드넓은 바다와 웅장한 선박이 3D 영상으로 그려지며 관객들을 극의 세계로 끌어당긴다. 거대한 선박의 뱃머리와 돛이 무대 위에 등장하면 그 위압감에 몰입도는 배가된다. 

"정의는 갖는 자의 것, 사랑은 주는 자의 것". 극을 관통하는 메시지다. 정의를 위한 인정사정없는 복수와 사랑을 위한 화해와 용서. 혹자는 에드몬드가 후자를 택하는 것이 지나치게 도덕적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효율적이고 이성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 결국 살아가는데 필요한 건 복수의 쾌감보다 사랑이 더 크니 말이다.

한편 이번 공연은 2021년 3월7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카이, 엄기준, 신성록, 옥주현, 린아, 이지혜, 최민철, 김준현, 강태을 등이 출연한다.

사진=EMK뮤지컬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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