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플랫폼 웨이브(wavve)를 통해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의 국내 최초 온라인 상영이 시작됐다. 웨이브는 6월 6일까지 전주영화제 출품 영화와 해외 초청작 등 총 97편을 서비스한다. 상영작은 작품별 구매 후 관람할 수 있다. 장편영화와 한국 단편영화(묶음 상영)는 7000원, 해외 단편영화(1편)는 2000원에 제공한다. 온라인 상영을 진행하는 97편의 작품 중 영화제에 상영될 영화를 선정하는 전문 프로그래머 3인이 엄선한 11개의 추천작을 소개한다.

# 문석 프로그래머 추천작 ‘보드랍게’ ‘저승보다 낯선’ ‘비디오 포비아’ ‘양치기 여성과 일곱 노래’

다큐멘터리 ‘보드랍게’에 등장하는 김순악은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비참한 삶을 살았다. 전주국제영화제와 깊은 인연을 가진 박문칠 감독은 한 인물을 성스럽게 포장하거나 박제화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의 삶을 생생하게 기록해 우리에게 보여준다. 경북 사투리로 김순악의 증언을 낭독한다거나 애니메이션, 아카이브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는 등 연출의 세공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여균동 감독의 ‘저승보다 낯선’은 전작 ‘예수보다 낯선’에 이은 ‘낯선 시리즈’의 두 번째 영화다. 전작에서처럼 여 감독 스스로 주인공 감독 역할로 출연한다. 사실상 2인극인 이 영화는 두 사람의 끝없는 대화만으로 전개됨에도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여균동 감독뿐 아니라 상대역인 주민진의 연기 내공 또한 만만치 않은 덕분이다.

‘비디오포비아’는 N번방 성착취 사건이 벌어지는 이 시대를 비춘다. 아이가 연기학원에서 수업하는 입센의 ‘유령’ 속 알빙 부인처럼, 아이는 정신적 공황에 휘말린다. 표현주의적 흑백 화면도 긴장감을 더한다. 14세기 카슈미르 시인 랄레슈와리의 시를 바탕으로 하는 ‘양치기 여성과 일곱 노래’는 주관이 뚜렷하고 현명한 라일라가 자신과 가족에게 닥친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라일라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페미니스트에 다름 아니다. 히말라야 산악 지대의 아름다운 풍광과 결혼, 이주, 유혹 같은 주제를 담은 일곱 개의 전통 민요 또한 아름다움을 더한다.

# 문성경 프로그래머 추천작 ‘이사벨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플레이 백’ ‘매기의 농장’

‘이사벨라’는 셰익스피어 고전 속 인물을 매개로 동시대 아르헨티나 여성들의 삶을 이야기해 온 마티아스 피녜이로의 희곡 연작, 그 다섯 번째 작품이다. 마리에는 연극 ‘자에는 자로’의 이사벨라 역 오디션을 준비 중이다. 그는 돈이 급해 한동안 연락을 끊었던 형제를 다시 찾고 그 과정에서 그의 애인 루시아나와 만난다. 이야기는 인생의 색을 맞추는 퍼즐처럼 펼쳐진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마리 로지에 감독은 전작들에서 젠더를 바꾸고 싶어하는 음악가, 게이 레슬러 등 평범하지 않은 인물들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왔다. 이번 신작은 펠릭스라는 독특한 인물이 가진 끝없는 창작열을 통해 전자음악에서부터 라디오, 팝, 오페라, 콘크리트 음악, 마이크 실험까지 관객을 순수한 음악 세계로 안내한다.

‘플레이백’은 VHS로 촬영된 오래전 기록을 재구성해 트랜스젠더와 드랙퀸 그룹에서 활동하던 인물, 라델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파운드 푸티지 다큐는 80~90년대 언더그라운드 쇼에서 활동하던 이들의 교류 속에서 행복한 동시에 끔찍했던 순간들을 드러내며, 두려움과 억압이 지배하던 사회에 저항의 한 형태이자, 존재의 행복을 드러내는 형식으로써의 트랜스 쇼를 보여준다. 이 빛나는 에세이 영화는 작고한 트렌스젠더들과 VHS 시대에 보내는 작별 인사다.

전설적인 감독이자 지칠 줄 모르는 창작자인 제임스 베닝은 ‘매기의 농장’에서도 그의 관찰적 영화 스타일을 지속한다. 그는 이번에 자신이 교수로 몸담고 있는 캘리포니아예술대학에 주목했다. 제임스 베닝은 독특한 감각으로 시각과 시간을 사용하는데, 학교의 이미지를 잘게 나눠 응시하는 동안 학교 내 복도 어딘가에서 영화 제목에 영감을 준 밥 딜런의 동명의 노래 ‘매기의 농장’이 들려온다.

# 전진수 프로그래머 추천작 ‘블라인드’ ‘오로슬란’ ‘관습의 폭력성’

‘블라인드’에서 후안은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시각 장애인 아버지 마르코와 함께 할머니 댁으로 향하지만 할머니는 이들이 도착하기 전에 세상을 떠난다. 후안은 그렇게 아버지가 어린 시절을 보낸 집에서 며칠을 머무르게 되고, 사촌을 비롯한 동네 아이들과 어울린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이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되면서 두 사람은 예기치 않은 갈등을 겪는다.

슬로베니아 출신의 마트야즈 이바니신 감독은 ‘오로슬란’에서 어쩌면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 이 이야기를 느린 화면, 풍경화를 보는 것 같은 구성, 다큐멘터리 같은 주민들의 일상 등을 비추며 더욱 단순하게 연출해 보여준다. ‘기억과 치유’에 대한 고요한 명상록 같은 작품이다.

한국 사회에서도 큰 파장을 일으킨 ‘미투 운동’ 이후에도 우리 사회에는 ‘관습’이라는 미명 아래 여성을 향한 무자비한 폭력과 불평등한 시선이 여전히 만연하고, 또 그에 대한 처벌은 관대하기만 하다. 일곱 명의 핀란드 여성 감독은 이와 같은 나쁜 관습에 맞서 ‘관습의 폭력성’을 만들었다.

사진=웨이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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