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씨야로 데뷔해 가요계에서 정점을 찍었지만, 연기자 남규리로 각인되기 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배역의 크기를 따지지 않고 꾸준히 정진한 덕분일까. 지난해 MBC ‘붉은 달 푸른 해’에 이어 곧바로 ‘이몽’으로 시청자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180도 다른 캐릭터를 오가면서도 남규리는 자신의 존재감을 뚜렷하게 각인시켰다. 가수 시절보다 더 예뻐진 거 같다는 말에 남규리는 “많이 늙었어요"라고 웃어보였다.

“이 드라마가 끝난다는 게, 이 역할을 다시 연기할 수 없다는 게 아쉬운 마음이 컸어요. 섭섭한 마음에 눈물이 나더라고요. 한동안 힘들게 지냈어요. 시대물에 대한 열망이 있었거든요. 또 한번은 꼭 노래하는 사람의 역할을 해보고 싶었는데 그런 지점도 해소할 수 있었어요. 현장에서 사랑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묵직한 서사 가운데서 미키가 조금은 라이트한 캐릭터기도 해서 NG가 나도 다들 웃어주셨어요. 누군가한테 현장에서 기쁨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게 행복하더라고요”

하지만 촬영 과정이 마냥 행복했던 건 아니다. 사전제작 드라마다 보니 연기를 하면서 시청자들의 피드백을 확인하고 즉각 방영할 수 없었기 때문. 대신 다른 면에서의 성장도 있었다.

“항상 다 해놓고 보면 아쉬움이 있어요. 스스로 아쉬운 게 보인다는 점에서 성장을 했구나 싶었어요. 조금 더 했어도 됐겠다 싶었죠. 사전제작이라 모니터링을 못하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었거든요. 수위조절을 잘 했어야 했기 때문에 많이 조심했어요. 저의 필모에 작은 내공이 하나 더 쌓인 거죠”

‘붉은 달 푸른 해’와 ‘이몽’의 촬영기간이 겹치다보니 체력적으로 힘들만도 했건만, 남규리는 연기 외에 OST까지 소화해냈다. 그러나 남규리는 대중에게 보여주지 못한 새로운 면을 연기한다는데 고조되어 있었다. 때문에 불철주야 촬영장과 녹음실을 오갔다.

“저는 ‘이몽’을 급하게 준비한 거였어요. OST도 밤새고 가서 녹음을 하고, 라이브 하고, 싱크가 안맞아서 또 재녹음을 하고 했죠. 가사도 외우고 연기도 해야 하니까 초반에는 급하게 찍었던 거 같아요. 헤어랑 의상은 다 의상팀에 맡겼어요. 워낙 잘하시는 분들이니까요. 덕분에 스태프들이랑 친해지는 계기가 됐어요”

여전히 배역을 ‘기다리는’ 입장이라는 남규리는 “어마어마한 초조함으로 불안한 날들을 보내면서 기다려요”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이런 말과 달리 두 작품 연속으로 주체적이고 강인한 캐릭터를 그려내며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제가 생각하는 배우의 이상향이 여러가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거에요. 저도 모르게 운명이 그렇게 정해지는거 아닌가 싶어요. 자기가 좋아하는 방향을 기대하다보면 어느 순간 그런 상생이 나오기도 하잖아요. 이렇게 가야겠다, 이런 작품을 해야겠다 하는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거 아닐까요. 저라는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인 거 같기도하고 연기하는 사람의 숙명이기도 한 거 같아요”

‘이몽’은 그 스케일도 남달랐지만,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제작된 기념비적인 작품이기도 했다. 작품에 임하는 배우들 역시 마음가짐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미키의 경우 가상의 캐릭터이긴 하나, 격동의 시기를 살아간 아무개를 그려야 했기 때문.

“제가 몰랐던 역사를 알게돼서 동요가 되기도 했어요. 근데 미키는 내려놓고 생각을 해야겠다 그래야 쉬어가는 캐릭터가 될 수 있겠다 싶었어요. 많이 무거울 수 있는데 내가 거기 휩쓸려서 가면 안되겠다, 번외로 라이트하고 기분 좋은 캐릭터로 가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가수로서가 아닌 배우로서 OST에 참여하게 됐지만 5년만에 음원을 내는 소감이 남다를만도 했다. 씨야는 당대 최고의 인기 그룹이었고, 여전히 그녀를 가수로 기억하는 이들도 있었기 때문. 남규리는 씨야 당시의 부담을 내려놓고 오히려 즐겁게 작업에 참여했다.

“저는 되게 좋았어요 녹음실 공포증이 있거든요. 예전에도 너무 열심히 연습을 하고 가서 녹음을 할 때 힘든 적이 많았어요. 차라리 라이브를 잘하지 녹음실 공포증이 있어요. 헤드폰을 끼고 제 목소리를 들으면 손에 땀이나고 그랬어요. 자신감이 없었던 거죠. 이번엔 그런 게 없어졌더라고요. 새로운 저를 발견했어요. 자신감이 생겼다기보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게 된 거 같아요”

어느덧 11년차 배우가 된 남규리에게 강렬했던 순간에 대해 물었다. 그는 “아직은 모르겠어요 배우의 삶이구나 이런건 깨닫고 있어요”라고 답했다.

“하루하루를 잘 살아야 되더라고요. 어릴 때는 열심히 산다는 개념인 줄 알았어요. 그런 삶도 좋은 삶이지만 제작년부터는 어떠한 생각으로 사는 것도 중요하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계획대로 되는 게 없는 거 같아요. 늘 계획대로 사는 이미지일 수도 있지만 전혀 계획하지 않고 일어나는 일들이 90%더라고요. 어차피 모든 게 왔다가더라고요. 사람도, 일도, 인기도. 남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산다기보다 스스로랑 경쟁하기도 힘든거 같아요”

특유의 동안미모로 쉽게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지만 어느덧 30대 중반에 들어선 남규리에게 연애 이야기를 빼놓을 순 없었다.

“사랑도 운명같아요 쉬운건 아닌거 같아요 주변을 봐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결혼을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3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누군가를 만나는게 쉽지 않구나 몸소 깨닫게 됐어요. 지금의 저와 맞는 사람을 찾아야 하잖아요. 지금의 내 생활도 있고, 상대방의 생활도 존중할 수 있는 여건이어야 할 거 같아요. 예전보다 연애할 기회가 더 없는 거 같아요. 예전에는 그래도 연락이라도 오고 자리라도 있고 했는데(웃음). 저는 항상 열려있어요. 가족이 있는 친구들이 집에가면 힘이 난다고 하더라고요”

사진=코탑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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