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캐스팅과 장대한 무대를 예고했던 제작비 100억 원의 대작 뮤지컬은 꽉 찬 객석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엑스칼리버'는 고대 영국의 아더 왕 전설을 무대로 옮겨와 영웅의 운명을 타고 난 자의 혼란과 고뇌, 그리고 선택을 촘촘하게 그렸다. 3시간으로 압축된 대서사시는 이야기와 웅장한 넘버, 화려한 볼거리가 빠르게 전환되며 한시도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6세기 고대 영국, 왕이 사망하자 색슨족은 영국을 식민화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다. 마법사 멀린은 혼란스러운 영국을 구원할 새로운 왕 아더를 왕좌에 앉히기 위해 그를 찾아간다. 자신이 왕족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양아버지 아래서 평범하게 살던 아더는 성인이 되자마자 멀린으로부터 자신의 태생과 운명에 대해 듣고 혼란해한다.

누구도 뽑지 못했던 성검 엑스칼리버를 바위에서 뽑아 영국의 왕으로 추앙 받은 아더는 친한 친구이자 뛰어난 기사인 랜슬럿, 용감하고 총명한 아내 기네비어와 색슨족을 물리치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주인공 아더는 탁월한 무예 실력을 갖췄지만 또래와 다를 바 없이 충동적이고 미성숙하다. 운명이 점지한 제왕의 길은 막 성인이 된 아더가 받아들이긴 부담스럽다. 캐스팅 소식이 알려졌을 때부터 큰 기대를 모았던 김준수는 아더의 혼란스런 내면과 유약한 면모를 특유의 미성과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표현한다.

대표적으로 김준수의 넘버 '왕이 된다는 것'은 터져나오는 절절함으로 그가 고민한 흔적을 드러낸다. 그리고 두 여자 캐릭터와 충직한 기사 랜슬럿이 아더 곁에서 캐릭터의 부족함을 보완한다. 

아더의 아내이자 든든한 조력자가 되는 기네비어를 연기하는 민경아는 유쾌하고 야무진 여성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특히, 운명의 선택을 받았기 때문에 어려움에 부딪히는 아더에게 “운명이 아닌 우리의 행동이 중요하다 믿는다”고 말하는 기네비어라는 인물은 아더에게 장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주목해야 한다. 

신영숙은 아더의 자리를 빼앗으려는 흑심을 숨기고 접근해 그를 조종하고 일을 꾸미는 이복 누나 모르가나를 강렬하다 못해 파괴적인 캐릭터로 그려낸다. 극 중 가장 큰 환호성이 쏟아지는 순간 중 하나는 신영숙의 솔로 넘버 '아비의 죄'가 흘러나올 때다. 기네비어는 아더를 돕고 모르가나는 그를 끌어내리려 하는 등 두 여성의 역할은 다르지만 대척점에 서서 서로 다른 매력으로 이야기를 풍성하게 한다. 

또한 기네비어와 사랑에 빠져 혼란에 빠지지만 아더 곁으로 돌아와 색슨족과의 전투에서 그를 보필하며 지키는 기사 랜슬럿은 엄기준이 연기한다. 엄기준은 친구 아더와 어울려 노는 초반부부터 고뇌하고 속죄하며 진정한 기사로 거듭나는 후반부까지 깊이감 있는 연기로 랜슬럿 캐릭터를 완전하게 표현한다.   

무대 역시 볼거리가 넘친다. 아더와 기네비어의 혼인 무도회 장면은 화려한 의상을 차려 입은 캐스트들이 우아한 멋을 선보이고, 색슨족 전사들이 도끼와 방패를 들고 군무를 선보이는 장면은 입을 떡 벌어지게 한다.

총 70명에 달하는 배우와 앙상블이 출연하기 때문에 무대가 꽉 찰 때는 뮤지컬인지 영화인지 헷갈리기까지 하다. 불을 뿜는 용의 영상을 활용하는 등 무대 효과도 몰입감을 높이는 데 한 몫 한다. 뿐만 아니라 아더가 바위산에서 성검 엑스칼리버를 뽑아들 때, 빗속에서의 색슨족과 격렬한 전투를 벌이는 장면은 무대라는 한계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스펙타클하다.

아더 왕의 대서사시를 알지 못해도 관람엔 문제가 없지만 빠르게 전개되기 때문에 연결고리를 빠트리는 듯 개연성 부족한 서사는 아쉽다. 아더는 김준수, 카이, 도겸(세븐틴)이 번갈아 연기하고 랜슬럿은 엄기준, 이지훈, 박강현이 맡았다. 기네비어는 김소향과 민경아가, 모르가나는 신영숙, 장은아가 더블 캐스팅됐다. ‘엑스칼리버’는 오는 8월 4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사진=EMK뮤지컬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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