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진을 ‘기생충’으로 처음 보는 관객들이 많을지 모른다. 장혜진은 이선균과 함께 한예종 1기 출신으로 연극, 드라마, 영화 등 수많은 작품에 출연한 연기파 배우다. 영화에선 큰 역할을 맡진 못했지만 그는 짧은 출연만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번 ‘기생충’은 그가 참여한 영화 중 가장 큰 작품이었다.
“제가 1998년에 배우로 데뷔했어요. 한예종 연극원 1기 출신이죠. 중간에 연기를 잠시 쉬었다가 이창동 감독님의 ‘밀양’ 단역으로 복귀했어요. 그때 송강호 선배님을 잠깐 뵀죠. 솔직히 연극원에서 연기할 때가 정말 힘들었어요. 제 자신이 행복하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번아웃’ 같은 느낌을 받았죠. 모든 걸 쏟아부었는데 점수(학점)로 제 연기를 평가받는게 싫었어요. 연기가 고통이었는데 ‘밀양’을 하면서 제 마인드도 변했어요.”
“지금은 연기 때문에 받는 고통도 행복한 거예요. ‘밀양’을 계기로 연극, 영화, 드라마 단역부터 다시 시작했어요. 제가 연극원 출신이라는 걸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죠. 연기를 다시 시작할 때 후배한테 연기 레슨을 받기도 했어요. 지금은 잠 못 자면서 연기해도 좋아요.”
장혜진은 참 인정이 넘치는 배우였다. 인터뷰를 하면서 느낀 건 그가 유쾌하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엄마, 가족, 친한 이웃같은 존재. 왠지 모를 따뜻함이 그에게서 전해졌다. 장헤진은 ‘기생충’을 찍으며 배우, 감독, 스태프 모두 가족처럼 느꼈다. 역시 일을 하든 무엇을 하든 가장 중요한 건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이었다.
“저는 촬영 현장에서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편이에요. 배우들을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제가 (최)우식 배우와 (박)소담 배우에게 부탁 하나 했어요. 제가 데뷔한 지 오래됐고 선배지만 잘 모르는 게 많으니 도와주라고. 둘이서 자기들도 잘 모른다고 저를 끌어안아주더라고요. 감동적이었죠. 소담 배우는 한예종 17기 후배인데 언니라고 부르며 편하게 대해주죠. 배우 입장에서는 현장이 편하면 연기도 자연스럽게 나와요. 송강호 선배님도 배우들을 하나로 만들어주셨죠. 선배님이 어떻게 연기 연구를 하시는지 대본을 보고 싶었는데 나중에 보여주신다고.(웃음)”
“‘기생충’의 가장 큰 힘은 배우들의 앙상블에서 나와요. (이)정은 언니는 제가 사랑하고 평생 붙어다니고 싶을 정도로 편안해요. 조여정 배우는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남달라요. 우식이는 속이 깊은 아이죠. 소담이는 기정 캐릭터처럼 야무지고 단단해요. 제가 언니라고 부를 정도로 믿음직스럽죠. 제가 정재일 음악감독님을 좋아해서 ‘기생충’ 엔딩곡 ‘소주 한잔’을 매일 들어요. 저는 정말 운이 좋은 것 같아요. 앞으로 봉준호 감독님처럼 숨어있는 사람들을 케어하고 송강호 선배님처럼 사람들을 보듬어주고 싶어요. 행복은 나눌수록 커졌죠.(웃음)”
‘기생충’의 흥행으로 장혜진의 앞날은 달라질까? 이미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은 장혜진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자칫하면 갑자기 찾아온 인기로 부담을 느낄 수 있지만 장혜진은 마음을 다잡고 있다. 계획보단 무계획으로, ‘기생충’ 이후의 자신의 삶을 설계하고 있다.
“모든 게 꿈같아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게 신기했죠. 정말 감사해서 어떻게 이 감사함을 앞으로 보답해야할지. 제가 내년에 고등학교 입학하는 큰 아이 챙기고 집안일을 하다보면 칸영화제에 갔고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받았다는 걸 잊어버려요. 언론시사회 때 울었던 건 감사한 일이 많이 떠올랐기 때문이었어요. 좋은 일이 많은데 자꾸 울어서 죄송하죠. 컴 다운!(웃음)”
“어렸을 때는 인생의 계획을 세웠더니 잘 안되더라고요. 정말 무계획이 나은 것 같아요. 무계획대로 저한테 주어진 일들을 하나하나 해나가면 언젠가 차곡차곡 경험이 쌓여 연기하는 데 도움되지 않을까 싶어요. 일단 ‘기생충’이 극장에서 내려갈 때까지 입을 조심해야겠어요. 제가 말이 많아서 스스로 ‘스포방지’하고 있거든요. ‘자폭’하지 말아야죠.(웃음)”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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