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한성우 작가는 어떻게 작가가 될 결심을 했냐는 질문에 머쓱한 듯 “계기는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저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고. 작가라는 이름은 그저 호칭일뿐 그에게 큰 의미는 아니라고 한다.

그는 누군가 자신을 '작가'라고 부른다면 작가겠지라고 간단히 답했다. 그의 삶도 그 답과 비슷한 듯 했다. 새로운 느낌이 좋아서 청주에 머물기를 택했으며, 서울에 올라온 것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고 했다. 그의 작품도 인위적인 것보다는 자연스레 흩어진 것에 집중했다. 그렇게 작품과 작가는 닮은 것처럼 보였다. 한성우 작가를 만나기 위해 비 내리는 현충일, 그의 가게에 들렸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소리에 고요히 젖은 바가 감성을 자극하는 날이었다.

한성우 작가가 풍경을 그리게 된 계기는 다름이 아니라 목공실이었다. 그는 ‘비워진 대상’에 눈길이 갔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눈이 머무는 것을 사진으로 찍다가 그림으로 그리게 됐다. 어떤 것들이 마음에 들어나 싶어서 보니 빈 전광판, 냉각판 등 의미가 비워진 대상들이 눈에 들어오더라. 그런 소재들을 가지고 작업을 진행하다가 목공실에 집중하게 됐다.

그 목공실은 공동작업실이었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간이다 보니 자기 자리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각자 목적을 가지고 이용하고 버려지는 공간들이었다. 다른 사람이 자기 쓰임을 위해 올 때까지 비워진 공간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사람들이 왔다가는 흔적이 계속해서 쌓이는데 그것들이 무언가를 만들고 난 후, 그에 따른 부가적인 흔적이라는 게 흥미로웠다”

그의 작품은 색을 잃은 듯 빛바랜 느낌이 가득하다. 한 작가는 “무대의 뒤편”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자신의 작품 철학을 설명했다.

“빛을 받는 공간이 있다면 빛을 받지 못하는 공간도 있다. 무대 위에는 사물들, 사람들도 자신의 자리가 정해져있다. 필연성이 지배하는 장소가 바로 무대 위다. 그런데 무대 뒤는 다르다. 무대 정면을 준비하기 위한 장소다. 상대적으로 느슨하고 동선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닌 혼재돼 있는 공간이다. 바로 목공소에 관심이 갔던 것도 그런 것 때문인 듯하다. 쨍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곳이 아닌 빛바랜 느낌. 그런 흔적들이 시간에 따라 켜켜이 쌓여가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사진=목공실#3,4_oil on canvas_388.0x260.0cm_2014 / 한성우 작가

작품은 작가의 삶과 환경을 따라 달라진다. 한성우 작가의 작품 또한 그랬다. 처음에는 드로잉을 보고 작업했던 과정이 이제는 추상적인 이미지에 접근하는 방식으로 달라졌다. 작가는 그 변화를 명확히 이야기를 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사진을 찍거나 드로잉을 보고 작업했다. 지금은 사진이나 참고 이미지를 두고 하지 않는다. 명확한 이유가 있어서 바꾼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순간순간 답답했던 것들을 풀어가는 것 같다. 이런 방식을 하다가도 마음에 안들어서 다른 방식으로 해보고. 감각적인 불편함이 변화를 일으킨 것 같다. 

사진은 너무 구체적이지 않나. 사진을 따라하다보면 의미없이 재현만 하게 된다. 이제는 ‘그게 왜 이렇게 그려야하지’라는 생각에 집중하고 싶다. 나는 무엇을 그리고 싶냐는 대상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됐고. 느낌이나 감정을 그리고 싶었고 쓸쓸함이나 우연적인 느낌이 그림에 더욱 직접적으로 드러났으면 했다”

그렇다면 그는 작품을 통해 어떤 세계를 그리고 싶었던 것들일까. 그가 눈길을 주었던 것은 왜 하필 뒤편의 부산물이었을까.

“왜 내가 목공실이 좋았을까, 어떤 성격에 관심을 가지는 것일까 라는 것에 집중했다. 생각해보니 우연성과 흔적이라는 것에 관심이 생기더라. 사람은 뭘 하든 의도로 가지고 할 수밖에 없다. 내가 외부에 보여주기 위해 가면을 쓰고 나 스스로도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이상적 이미지가 있다. 

그런 와중에 나 자신 안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부산물같이 남겨진 것들이 분명히 있다. 그건 의도한 것도 아니고 필연적 결과물이 아니지만 시간에 따라 쌓여가고 그 흔적을 남긴다. 오래된 벽을 보면 떨어지고 그것을 보수했던 균일하지 않은 흔적들이 보이지 않나. 그런것들이 삶의 진실에 가깝지 않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설명이 가능한 것들에 반감을 가잔 것 같기도 하다”

작년 12월말 청주에서 서울로 올라온 지 몇 개월 되지 않았다는 한성우 작가. 지금 운영하는 연남동의 작은 바 ‘오로시 쌀롱’ 또한 운영를 하게 된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았다고. 달라진 생활방식에 어려움을 겪지 않았는지 묻자 그는 “예기치 않은 일들은 겹치는 법이니까”라고 웃어넘겼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는 정해진 시간에 해야하는 것이 없었다. 작업도 그렇고 학교 수업도 빼고 자하면 언제든지 뺄 수 있는 거니까. 그런데 가게를 하는 것은 약속이다. 처음에는 작업과 같이 병행하는 게 힘들었다. 마음과 같지 않게 삐거덕거리기도 하고. 이제 서서히 익숙해지는 것 같다”

청주에서의 삶과 서울에서의 삶은 어떤 차이가 있냐는 질문에는 “서울같은 경우는 조금 체감되는 것은 속도에 대한 것이다. 청주에서 어떤 커뮤니티에 속해있다면 달랐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대부분 혼자있었다. 외부에서 나한테 자극이 들어오는 것이 없다보니 하루를 오로지 내가 계획한대로 보내게 된다. 그런데 서울은 속도도 빠르고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도 밀려온다. 또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속도가 상대적으로 빠르기도 하고. 그런 것들이 작업 활동에서 자극이 되기도 한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변화된 삶이 그의 작업에는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그는 “작가들마다 다른데 저같은 경우는 하나의 주제를 오래 끌고 간다. 그래서 가시적으로 외부의 변화가 작업에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 같다. 관찰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지. 여러 가지로 새롭게 시도하는 것이 있긴 하다”라고 말했다. 

현재 친한 지인과 함께 살고 있다는 한성우 작가. 작업실이 성산동에 있어 가까운 곳에 집을 마련했다고 한다. 그는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다.

“바가 아무리 잘돼도 작업은 멈추지는 않을 거다. 그림을 계속 그렸으면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기회가 있었으면 하고. 막연하지만 작업을 계속하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으면 좋지 아닐까. 앞으로 7월에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9월에도, 연말에도 계획해둔 일이 많아서...요즘 고민이라면 작품과 바 운영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정도인 듯하다”

사진=라운드테이블(권대홍),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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