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쌀국수, 태국 팟타이, 인도네시아 나시고렝 등 동남아 각국의 음식은 이제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메뉴다. 이 중에서도 관광지로 큰 각광을 받고 있는 필리핀 음식은 전통 요리에 스페인, 미국, 중국 등 다양한 문화의 영향을 받아 ‘퓨전 요리’와 같이 다채롭고 매력적인 맛을 자랑한다.

필리핀 음식의 정수를 맛보고 싶으면 팜팡가주로 가야 한다. 골프 여행지 ‘클락’과 ‘수빅’으로 잘 알려진 팜팡가주는 ‘필리핀의 미식 수도’라고 불릴 만큼 다채로운 식문화를 자랑한다. 팜팡가 지역의 요리는 스페인처럼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 조화롭고 진한 맛을 내기 위해 손이 많이 가더라도 다소 복잡한 조리법을 이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우수한 식재료도 미식 수도라는 명성에 한 몫 했다. 예전부터 근처 피나투보 화산이 폭발하고, 팜팡가 강이 범람하면서 이 지역 토양은 수분이 많고 기름지기로 유명했다. 기름진 토양에서 재배하는 작물은 품질이 좋다. 이처럼, 팜팡가 지역의 훌륭한 식재료와 스페인에서 건너온 조리법이 만나 필리핀 ‘미식수도’ 팜팡가가 탄생했다.

 

파에야인듯 파에야 아닌, 브링헤(Bringhe)

브링헤는 노란 강황 육수에 갖가지 채소와 육류를 곁들여 지은 쌀요리로 파에야와 유사하다. 하지만 브링헤는 놀랍게도 스페인 식민 시대 이전부터 있던 음식으로, 정복자들이 도착하기 전 전혀 교류가 없었던 두 나라에서 비슷한 음식을 개발한 것이 주목할만하다.

맛을 묘사하자면, 마늘, 양파, 피망, 당근 등 갖가지 야채가 내는 향미와 닭고기, 코코넛 밀크의 풍미와 감칠맛이 일품이다. 코코넛 밀크가 들어가 너무 무겁고 느끼하지 않을까 걱정이 될 수도 있지만 강황이 끝맛을 알싸하게 잡아줘 물리지 않고 계속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코코넛 밀크의 기름진 질감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비중을 줄이고 육수량을 늘려 강황의 매콤함을 즐길 수도 있다.

 

세계가 극찬한 맛, 하지만 서민의 애환이 있는 요리 시시그(Sisig)

시시그는 돼지 머릿고기와 닭 간을 칼라만시, 양파, 고추와 볶은 음식이다. 볶은 돼지고기의 쫄깃한 식감과 묵직한 불맛에 식초, 고추, 소금을 섞은 양념을 곁들여 깊고 풍부하지만 느끼하지 않게 먹을 수 있다. 새콤짭짤매콤한 맛으로 현지인과 여행자에게 일품요리나 맥주 안주로 인기가 많다.

최근에는 머릿고기와 닭간 외에도 요리사의 재량에 따라 족발, 닭고기, 통조림 참치 등을 추가하기도 한다. 세계적인 스타 셰프 고 앤서니 보댕이 방송에서 그 맛을 극찬하기도 했다. 앙헬레스 시티는 무형 문화재로 '시시그 볶기'를 등록하는가 하면, 매년 12월 '시시그 페스티벌'을 연다. 시시그 페스티벌에서는 정통 레시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재료를 넣은 시시그를 맛볼 수 있으니, 여행 시기가 겹치면 꼭 방문해보기를 추천한다.

 

소고기와 형형색색 야채가 진한 토마토소스에…모르콘(Morcon)

모르콘이라는 이름은 원래 스페인 전통 소시지를 의미하지만, 필리핀에서는 얇게 저민 쇠고기 등심에 초리소, 소시지, 삶은 계란, 당근, 피클 등을 넣고 둘둘 말아 토마토소스에 졸인 요리다. 취향에 따라서 치즈나 베이컨 등을 추가하기도 한다.

맛은 우리에게도 무척 친숙하다. 소고기와 야채를 토마토 소스에 푹 졸여 이태리의 토마토 소스가 생각난다. 쇠고기로 갖가지 재료를 둘둘 말고 동그랗게 썰어 놓은 모양도 꼭 김밥처럼 생겨 재미있게 먹을 수 있다. 재료도 비싸지 않고 가정에서 흔히 쓰는 종류기 때문에 ‘집밥’으로 애용하는 요리다. 필리핀 현지에서도 팜팡가의 모르콘은 초리소를 듬뿍 넣어 감칠맛을 극대화 하기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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