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한 사슴과 같은 눈망울의 천정명(36). 14일 개봉한 ‘목숨 건 연애’(감독 송민규)에서 지고지순한 남사친으로 훈풍을 일으키고 있다. 추리소설작가 제인(하지원)의 소꿉친구이자 성인이 된 이후에도 곁을 지켜주는 이태원 순경 설록환의 아우터를 걸쳐 입은 17년차 배우를 만났다. 이러저리 재는 법 없이 솔직함 자체인 소울토크가 이어졌다.

 

우여곡절 개봉...영화에 목말라 했는데 오랜만에 촬영해서 기분이 좋았어요. 원래는 올해 2~3월에 개봉하기로 했는데 미뤄지고, 중국 차이나필름과 완다 쪽 반응이 좋아 한·중 동시 개봉하려다 사드 사태 이후 분위기가 나빠져 개봉을 아예 못할 줄 알았거든요. 늦었지만 관객과 만나게 돼 업돼 있는 상태예요.

 

목숨 건 연애...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촬영했어요. 이런 촬영장을 만난 건 배우로서 큰 행운이에요. 좋은 사람들과 기분 좋게 작업해서 오래 기억에 남을 듯해요. 영화가 잘돼서 제 필모그래피에 뚜렷이 박혔으면 해요. 개인적으로는 록환과 제인의 어린 시절이 플래시백으로 펼쳐지며 팍팍 넘어가는 신이 눈에 자꾸 들어와요. 그들의 순수한 성장과정이 마음에 와닿아서요.

 

사랑밖엔 난 몰라...한 여자를 정말 사랑한다면 설록환처럼 모든 걸 다 바칠 수 있어요. 여사친이 애인이 될 수도 있고요. 초등학교 2학년 때 첫 눈에 반한 친구를 오래 짝사랑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헌신적이었죠. 좋으면 좋다고 표현하지 밀당 같은 거 하지 않아요. 그런데 사귀던 여자들 대부분이 부담스러운지 싫어하더라고요. 고마워하지도 않아서 전 저대로 상처를 입고요. 만약 사랑하는 상대가 외국으로 가서 우리 둘만의 인생을 만들어가자고 제안한다면 전 연기, 인기, 돈 등 모든 거를 포기하고 떠날 수 있을 것 같아요.

연상의 하지원 고현정...선배님이고 여전사로 유명한 분이라 촬영 전 걱정을 많이 했어요. 작업해보니 칭찬하는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그 정도 경력이면 보통은 자기 것만 하려고 하는데 상대를 편안하게 배려해주세요. 리허설 때도 제가 준비해온 걸 다 맞춰주셨고요. 그런 배우 만나기 힘들거든요. ‘여우야 뭐하니’ 당시 고현정 선배님과 공연할 때도 엄청 혼나기도 했으나 저에 대한 배려와 애정에 기인한 거라 지금까지도 기억에 많이 남고요. 제가 선후배 여배우들에게 잘 맞춰주는 편이기도 하고요.(웃음)

 

진백림...2012년 중국에서 드라마 ‘친정보위전’을 촬영한 적이 있는데 나만 한국인이다 보니 말이 통하질 않아서 무척 답답했어요. 그래서 이번에 FBI 프로파일러 제이슨 역의 대만배우 진백림을 보고 얼마나 답답할까 걱정했죠. 그런데 연기적인 눈빛과 호흡이 있으니 되긴 되더라고요. 그리고 워낙 밝은 성격이라 오랜 친구처럼 “하이~하이~” 하면서 현장에 잘 적응했어요. 마지막 저희 둘이 붙는 액션장면은 2~3일에 걸쳐 이뤄졌는데 전날과 당일 몸 풀고 합을 맞추면서 연습했던 기억이 나요.

 

박해일 선배처럼...2005년 호평 받았던 ‘태풍태양’과 이듬해 ‘강적’ 이후 영화 출연 기회를 놓쳐버렸어요. 그땐 20대 초중반이라 너무 어려서 소속사에서 대부분 결정하고 시나리오조차 안 보여줬으니까. 보자고 말이라도 하면 “너가 왜 보니?”하고 혼났던 기억이 나요. 후배, 동료들이 영화로 계속 필모그래피를 쌓아가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많이 부러웠죠. 제 꿈은 예전부터 박해일 선배처럼 영화만 계속 하는 거였어요. 지금도 늦지 않았겠죠?

애증의 로코...스릴러, 액션도 좋아하지만 로맨틱 코미디를 매우 좋아해요. 제게 제일 맞는 색깔이라 드라마에서 많이 해왔고요. ‘목숨 건 연애’도 자신 있는 장르라 선택한 거죠. 제가 부족해서인지 무거운 캐릭터를 맡으면 힘들더라고요. 그럼에도 이젠 로맨틱 코미디는 더 이상 안하고 싶어요. 이제는 변화가 필요한 때이니까. 스릴러, 액션에 도전해보고 싶고, 주인공이 아니어도 송강호 황정민 선배님들과 호흡을 맞추고 싶어요. 조그만 배역이어도 임팩트 있는 캐릭터라면 고맙죠.

 

핸디캡인 선한 얼굴...저는 상황, 캐릭터에 맞춰 진지하게 연기하고 있다고 하는데 화면에서 보면 얼굴이 너무 선해 보이더라고요. 하정우 박해일 류승범씨는 맡는 캐릭터마다 색깔이 모두 다르지만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있잖아요. 배우에겐 그런 게 중요하거든요. 스릴러, 액션에 어울리는 얼굴이 있는데 그들은 어느 장르에나 잘 어울려요. 와~진짜 이거는 아직 따라가려면 멀었구나 싶어요. 빨리 저도 그렇게 되고 싶죠.

 

예능 ‘아는 형님’...JTBC 예능 ‘아는 형님’에 한승연씨랑 출연했는데 반응이 좋아서 다행이에요. 예능 출연은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이라 말실수를 할까봐 매번 두렵거든요. “연기나 잘해라”와 같은 댓글에 상처받는 경우가 많고요. 저도 열심히 하는데 안 되는 걸 어쩌냐고요. ‘진짜사나이’ ‘아는 형님’에서 분위기를 익혔으니 즐겨 시청하는 ‘정글의 법칙’ ‘라디오스타’ ‘냉장고를 부탁해’ ‘무한도전’에도 출연해보고 싶긴 하네요.

‘마스터-국수의 신’ 파동...올해 드라마 ‘마스터-국수의 신’ 설화는 실수했구나 싶어 많이 후회돼요. 제가 많이 부족해 좌절했던 게 한탄스러운 글로 표출이 됐던 것 같아요. ‘마스터’ 할 때 우울한 역할이라 성격이 계속 어두워졌거든요. 지인들과 부모님도 보기 힘들다고 하실 정도로 그렇게 센 거는 처음 해봤고요. 차라리 최민식 이병헌 선배님 구도의 ‘악마를 보았다’와 같은 영화였으면 표현이 더욱 확장됐을 텐데 아쉬워요.

 

인생작...영화로 인생작을 만들고 싶어요. 드라마에 비해서 영화 제안이 적은 편이에요. 비집고 들어가기가 힘드네요. 유명 감독들은 이미 사단이 형성돼 있고요. 좋은 영화라면 계속 하고 싶었어요. 선배 한분과 고민 상담을 한 적이 있는데 “계속 두드리다 보면 언젠가 문이 열릴 거다”고 말씀해주셔서 용기를 얻었어요. 이제 시작이라 생각하고 제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해야죠. 내년에 들어가는 작품들이 많다고 하니 모든 네트워크를 동원해서 적극적으로 대시해 보려고요.

 

사진 지선미(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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