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적 남자’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돌아왔다. 1990년대 ‘브레이킹 더 웨이브’ ‘어둠 속의 댄서’로 할리우드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그가 어느 순간 살인, 섹스 등 인간의 욕망을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감독이 됐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상영 중 관객들을 자리에서 일어나게 했던 ‘살인마 잭의 집’은 한 인간의 고해성사와 살인의 순간을 통해 욕망의 끝은 ‘희망’이 아닌 ‘파멸’이라는 걸 보여준다.

‘살인마 잭의 집’은 잔혹한 살인을 저지르며 이를 예술이라 믿는 자칭 ‘교양 살인마’ 잭(맷 딜런)이 저지른 다섯 개의 범죄에 대한 고백을 따라가는 교양 스릴러다. 이 영화는 잭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잭은 버지(브루노 간츠)에게 고해성사를 하듯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던 이야기를 쏟아내며 보는 이를 영화 시작과 함께 극 속으로 빨려들게 만든다.

누구나 꿈꾸는 ‘욕망’이 있다. 12년간 벌인 60번의 살인 중 5개의 스토리를 공개하면서 잭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내면을 드러냈다. 살인이 일어나는 순간, 시신 처리 과정은 긴장감을 높이기보다 오히려 차분하게 표현됐다. 여기에 글렌 굴드의 연주곡이 배경음악으로 깔리면서 마치 클래식 연주회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게할 정도로 살인 장면은 아름다움을 치장한 모습처럼 표현됐다.

잭 역을 맡은 맷 딜런의 연기도 남다르다. 사이코패스인 잭의 표정, 발성 모두 차분하다. 살인마 같지 않은 그의 연기가 오히려 잭을 ‘살인’에 미친 사람처럼 보여준다. 이 모든 게 ‘살인’을 일상적으로 아무렇지 않게 그려낸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의도처럼 보일 정도다.

살인을 예술이라 칭하던 잭이 유일하게 아끼는 것이 있다. 바로 ‘집’이다. 다른 예술가들처럼 자신의 작품을 만들길 원했던 잭은 집을 건축하는 데 공을 들인다. 집은 불안한 그의 내면을 감싸줄 공간이 된다. 계속 집을 만드는 데 실패하는 건 그가 인간애같은 건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결국 그가 시체를 모으고 자리잡은 곳은 ‘냉동창고’다. 차갑기만 한 냉동창고는 잭의 내면과 닮아있다. 잭이 꿈꾸던 이상도 살인으로는 해결되지 못한다는 걸 냉동창고와 그 안에 ‘예술작품’으로 표현된 시체들이 느끼게 해준다.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걸 영화는 말한다. 잭은 청결강박증이 있는 사이코패스다. 살인을 저질러도 시체를 치우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살인이 계속되고 자신의 범죄가 경찰에게 들키지 않자 잭은 강박증을 이겨내고 더 대담하게 살인을 저지른다. 욕망이 인간의 약점을 이겨낸 것이다.

그 과정을 보여주면서 인간의 잔인함과 욕망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깨닫게 해준다. 5개의 살인은 잭이 ‘예술가’가 돼가는 과정이다. 첫 살인은 본능적이었고 두 번째 살인은 ‘신의 선택’이었다고 합리화한다. 살인이 진행될수록 잭은 자신이 살인이라는 ‘예술’을 한다고 믿는다. 예술을 위해 사람을 죽이는 선택을 하는 잭을 통해 욕망으로 가득찬 인간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잭으로 분한 맷 딜런은 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감정을 연기로 소화했다. 나약한 잭, 자신감에 차있는 잭, 살인마의 얼굴을 한 잭 등 장면마다 달라지는 ‘사이코패스’ 잭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다. 우마 서먼, 라일리 코프 등도 짧게 등장하지만 임팩트있는 연기력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버지 역의 브루노 강쯔는 묵직하면서도 차분한 모습으로 보는 이와 영화 속 잭을 압도한다. 마치 잭을 데리러 온 ‘저승사자’처럼 말이다. 16일(현지시각) 암 투병 끝에 사망한 그의 연기와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독특한 연출세계, 살인마로 연기 변신한 맷 딜런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살인마 잭의 집’은 그 모든 궁금증을 ‘만족’으로 바꿔줄 영화가 될 것이다. 러닝타임 2시간 32분, 청소년 관람불가, 2월 21일 개봉.

사진=‘살인마 잭의 집’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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