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는 어떤 감독인가. 최근 몇 년 동안 대한민국에서 가장 잡음이 많았던 영화 감독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의 각본과 연출 능력 또한 부정할 수 없다. '풀잎들'도 영화 감독 홍상수의 능력을 확인하기 좋은 작품이다.

 

세상에는 극적인 이야기와 극적이지 않은 이야기가 존재한다. 극적인 이야기를 더욱 재밌게 만드는 능력이 탁월한 감독들이 있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그 중 대표적이다. 홍상수는 반대편에 속한다. 그는 '북촌방향' '옥희의 영화' 등에서 알 수 있다시피 우리의 일상을 아주 극적으로 재밌게 만들어내는 재주가 뛰어나다. 영화 '풀잎들' 역시 마찬가지로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내 관객들을 헤어나오지 못하게 한다.

영화는 골목 커피숍 앞에 있는 고무대야 속 풀잎들을 비추며 시작한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작가는 아니지만 컴퓨터에 무언가를 계속 끄적이는 아름(김민희)이 커피숍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이야기를 스크린에 펼쳐낸다.

아름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각자 다른 사연을 지니고 있다. 친구의 사망으로 말싸움을 하는 미나(공민정)와 홍수(안재홍), 성화(서영화)에게 빈 주머니 사정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창수(기주봉), 작가인 지영(김새벽)에게 공동 집필을 하자고 했다가 거절 당하고, 아름에게 "비범하다"며 수작걸다 또 거절 당하는 경수(정진영), 순영(이유영)에게 친구 자살의 책임을 묻는 재명(김명수), 누나 때문에 여자친구 연주(안선영) 앞에서 민망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아름의 남동생 진호(신석호)가 있다.

 

영화는 단순히 이 인물들의 대화로 흘러간다. 이 대화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 흔들거리고 이들의 감정은 고무대야 속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풀잎들처럼 부딪힌다. "산다는 게 비참하다" "너는 나한테 그런 말 하면 안 되지" "우리는 사랑한 것뿐이에요" 등 이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지극히 일상적이기에 공감을 일으키지만, 그 내면은 또 지극히 치열하다.

모든 캐릭터들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 중에서도 이야기 중심에 서 있는 관찰자 김민희의 연기는 일품이다. "비범하다"는 경수의 말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차가워보이는 연기를 하면서도 동생 커플 앞에서는 열변을 토하며 불같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작품은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2015) '밤의 해변에서 혼자'(2017) '그 후'(2017) '클레어의 카메라(2018)'에 이어 김민희X홍상수의 다섯번째 작품이다. 아직 개봉하지 않은 '강변 호텔'까지 합하면 두 사람은 여섯 작품을 함께 했다. 김민희는 자신이 홍상수의 '뮤즈'인 이유가 단순히 개인적인 관계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풀잎들'에서 한 번 더 입증했다.

러닝타임 1시간6분. 15세 관람가. 25일 개봉.

 

저작권자 © 싱글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