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활동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서울 마포구는 특별한 공간이다. 경의선 숲길과 홍익대학교, 신촌 골목마다 예술적 사유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공간이 하나 있다. 지하철 6호선 대흥역 1번 출구에서 내려 앞으로 걸어가면 '책극장'이라는 콘셉트의 문화 공간 '숨도'를 만날 수 있다.

이곳의 대표 김지형(39)씨는 지난 2017년 9월부터 숨도를 맡으면서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는 공간을 꾸며왔다.

"2016년에 도쿄 츠타야 서점에 갔다. 요즘은 교보문고도 그렇고 별마당 도서관도 그렇고 책이 아닌, 책에 담긴 라이프 스타일을 파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근데 그게 다 츠타야 서점에서 온 거다. 그때 츠타야 서점을 보고 거기서 충격을 받았다."

김 대표는 자신이 숨도에 처음 왔을 때는 숨도가 존폐 위기에 서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가 처음으로 한 일은 말 그대로 '심폐소생술'이었다. 브랜드 리뉴얼 수준의 단장이 시작됐다. SNS 홍보와 각종 강연 등의 프로그램을 이끌며 대중과의 소통을 시도했다.

"사는 게 바빠 '연결'이 끊어진 사람들에게 어떻게 도달할지를 신경 썼다. 그 전의 숨도는 이렇지 않았다. 수준은 높았지만 대중성은 부족했다. 문화적 소양이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는 편견, 그런 문턱이 존재했던 것 같다. 나는 2030 대학생과 직장인들을 주 타깃으로 잡고 누구나 편하게 올 수 있는 공간을 꾸리려고 노력했다."

책이 있는 편안한 공간은 사실 이미 마포구에선 희귀한 공간이 아니다. 김 대표는 이 점도 놓치지 않았다. 마지막 관건은 숨도 만의 차별화였다.

"요즘은 스마트 폰을 이용한 접속, 그러니까 가짜 접속은 참 많다. 숨도의 모토는 '진짜 연결'이다. 첫째는 나와의 연결이다. 현대인은 SNS에서 생각 없이 '좋아요'를 누르지만 자신에 대한 깊은 고민은 잘 못 하는 것 같다. 숨도가 강연이나 책, 명상 등을 통해 사유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둘째는 타자와의 연결이다. 동물, 식물, 지구 환경에 대한 얘기다. 요즘은 살다 보면 '뭣이 중헌디' 싶다. 이러면 결국 지구만 죽는다. 숨도에서 생태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으면 했다."

숨도는 크게 책극장과 카페, 갤러리로 구성된 1층과 강연실과 사무실로 구성된 7층으로 나뉜다. 책극장은 숨도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곳이다. 벽면 가득히 들어찬 책은 여타 서점이나 도서관과 달리 뚜렷하게 구분돼 있지 않고 어우러져 있다. 나무들처럼 우뚝 선 책장들 사이에 꾸며진 작은 무대는 이곳이 단순한 카페나 도서관이 아님을 암시한다.

"책극장에서는 베스트셀러나 마케팅을 통해 히트한 책은 조명하지 않는다. 한 달에 한 번 주제를 정해서 추천하고 싶은 책만 깔아 놓는 거다. 누구나 와서 무료로 보고 갈 수 있다. 가끔 책에 있는 걸 꺼내서 연극도 한다. 그래서 책극장이다. 1층에서는 책의 얼굴들이라는 프로그램도 연다. 보통 책 관련 강연에는 저자가 온다. 그게 싫어서 북 마케터, 제작자, 편집자, 북 디자이너 등을 강연자로 초청하고 작가는 사회를 보게 했다. 반응은 상당히 좋다."

김 대표의 숨도는 삶에 바투 다가선다. 이론이 아닌 생활의 풍경을 담고자 한다. 이 역시 차별화를 위해서다. 강연자로 형이상학자를 부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3월 화제가 '삶과 죽음'이었다. 숨도는 소방관을 모셨다. 우리는 발이 땅에 닿아 있는 사람들을 부르려고 한다. 그분이 말씀하시길 하루하루 자신의 일을 시시포스처럼 할 뿐이라고 하시더라. 그 강연 때는 나도 눈물이 났다. 죽어가는 것에 대한 얘기, 살릴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던 생명에 대한 얘기…."

그는 원래 잘나가는 화이트칼라 회사원이었다. 대기업 회장상까지 받은 그야말로 '핵심인재'였던 김 대표는 회사 생활의 한계를 느끼고 부업에 눈을 돌렸다. 그렇게 시작한 부업은 가지에 가지를 쳐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브랜드 마케팅 일을 했다. 그때 2005년이었는데 팀장님이 당시 마흔이셨다. 근데 그분이 아직도 팀장이시다. 내 나이에는 아무리 잘해도 승진을 못 하겠구나 싶더라. 이것저것 해보는 실험을 1년 넘게 했다. 동물단체 SNS를 관리해 줬더니 동물축제 기획 일이 들어왔고, 거기서 출판사로 연결됐다. 생각지도 않은 기회가 저절로 연달아 생긴 거다. 예전부터 공간을 직접 운영해보고픈 욕심이 있었는데 운이 닿아 여기까지 왔다."

확실히 삶은 이전보다 더 불안해졌다. 그러나 대신 김 대표는 '자율'을 얻었다고 말했다. 더불어 삶에 대한 만족도도 올라갔다고 고백했다.

"조화되는 지점이 있을 것 같다. 적당한 불안과 적당한 만족의 타협점 말이다. 주도적인 생활이 중요하다고 본다. 대기업도 주도적으로 가야 한다. 여러 회사를 다니면서 느낀 게 있다. 너무 자율성만 보장하면 사람들이 일을 안 한다. 하지만 또 반대로 하면 숨 막혀 죽는다. 그럴 게 아니라 자율과 책임을 둘 다 주면 된다. 하나 더 말하고 싶다. 이젠 1인 에이전시가 가능한 시대다. 언젠가는 이런 게 당연한 사회가 올 거라 믿는다. 서유럽 쪽은 이미 그렇게 가고 있다."

불안과 만족의 '타협점'을 찾은 사람을 그는 봤을까. 김 대표는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했다.

"그 사람들은 많이 해 본 사람들이다. 골방에 앉아있기만 한 게 아니라 몸으로 부딪쳐서 결론을 얻은 거다. 나도 지금은 결론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사진 권대홍(라운드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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