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액션영화 ‘아수라’부터 쌍천만 영화 ‘신과함께’ 시리즈, 영화 ‘공작’ 그리고 범죄실화극 ‘암수살인’까지 편수도 적잖지만 도전의 연속이란 점이 두드러진다. 배우 주지훈(36)의 행보다.

 

 

변절하는 속물 형사, 과거의 기억을 찾으려는 저승 일직차사, 원칙주의 북한군 장교를 지나 비상한 두뇌를 지닌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까지 이르렀다. 우월한 비주얼을 장착한 꽃미남 청춘스타의 잔영이 강하게 남아있음에도 스스로 뻑뻑 지워버린 케이스다. 개봉(10월3일)을 앞두고 미술관 옆 레트로 무드의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암수살인’에서 강태오는 기분 내키는 대로 사람들을 살해하면서도 감정의 동요나 뉘우치는 기색 따윈 없다. 암수사건을 집요하게 조사하는 강력계 형사 김형민(김윤석)을 상대로 자백과 농락의 경계를 줄타기하며 '밀당'을 벌인다. 그러면서 한껏 쾌감을 느낀다. 주지훈은 어수룩한 청년의 모습부터 삭발에 죄수복을 입은 채 능란한 부산사투리를 구사하며 마성의 질감을 잘도 살려낸다.

“시나리오를 보는데 쑥쑥 잘 넘어갔다. 이야기가 재미나게 다가왔다. 새로웠기 때문이다. 기존 형사 장르물을 탈피하는 느낌이었다. 사실 새로운 이야기가 재밌기는 쉽지 않다. 낯설어서 이상하거나 허전한데 이 작품은 새롭거니와 재밌기까지 했다. 그런데 캐릭터가 너무 울퉁불퉁했다. 내면이나 표현방식이 그렇단 의미다. 하지만 감정의 고저가 크게 드러나는 역할을 해보고 싶었을 때라 끌렸다. 한편으론 관객이 그런 표현을 잘 받아들여줄까 고민됐다. (김)윤석 선배 캐스팅 소식을 듣고선 큰 힘을 얻었다. 도움 받고 의지할 수 있겠다 싶어서.”

‘암수살인’은 살인마와 형사 캐릭터, 배우 주지훈과 김윤석이 시종일관 끌고가는 영화다. 두 사람이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는 접견실 장면이 무려 7차례나 등장할 정도다. 두 남자는 첫 공연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꽉 짜인 호흡을 보여준다.

 

 

“내가 좀 부족해도 에너지를 채워줄 수 있는 상대 배우가 있으면 걱정을 하나 덜어내니까 집중하기에 좋고 용기내서 연기를 펼칠 수 있어서 좋다. (하)정우 형이 ‘너무 좋고 귀여운 선배다. 너랑 진짜 잘 맞을 거다. 소문은 신경 쓰지 말아라’ 귀띔해줘 신나는 마음으로 만났다. 인간관계란 게 내가 상대를 어렵게 생각하면 어렵게 다가오고, 편하게 생각하면 편하게 다가오지 않나?”

부산 태생의 곽경택 감독이 제작자 겸 시나리오 작가로 참여했다. 주지훈은 곽 감독과 몇 달간 매일 만나서 2~3시간씩 과외 공부하듯 사투리 수업을 진행했다.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것과 똑같이 연습했다. 한편의 연극을 공연하는 느낌이었다.

“새로운 작업방식이었고 고됐지만 보람된 시간이었다. 맨날 내 무덤을 스스로 파는 스타일이다.(웃음) 어렸을 때 사투리가 등장하는 영화들을 재미나게 봤다. ‘나도 언젠가 할 거야!’란 생각을 했기에 제대로 된 사투리를 구사할 수 있는 기회라 신나 했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상상 이상으로 어려웠다. 그 지역 출신배우들이 너무나 잘해왔고 온 국민이 심판자이므로 진입장벽이 너무 높은 분야였다. 시나리오에 점자책처럼 성조를 표시해서 외우기도 하고, 혼자서 대사를 쳐가며 연습하고, 헤드폰을 낀 채 청담동 거리를 사투리로 욕하며 걸어 다녔다. 행인들이 날 정신이상자로 봤을 거다.”

극중 강태오에 대해 ‘감정불가 캐릭터’라는 대사가 등장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학대당한 트라우마가 있으나 그것 가지고는 이해되거나 설명되지 않는 인물이다. 원래 그의 스타일로 알려진 본능적으로 던지면서 연기했을까. 동물적인 직감으로 이 캐릭터에 스며들었을까. 손놀림, 고개 각도 하나까지 디테일하게 계산됐고, 연습량으로 채워진 결과물이란 고백이 돌아왔다.

 

 

“현실에서 무수히 많은 일들이 벌어짐에도 말이 안 되는 일이 있지 않나. 인간이 악해지는 데어떤 큰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럴 수 있다고 받아들이려 했다. 이 영화 안에서도 복수나 계획이 아니라 충동적인 분노로 묻지마 살인이 벌어진다. 일종의 정신병이다. 캐릭터를 분석하고 이해하려 하기 보다는 최대한 받아들이려고 했다. 전에 악한을 연기했을 땐 이유가 있거나 어쩔 수 없이 변해갔다면 이번엔 그게 아니었다.”

이 작품을 하기로 결정했을 때 주변에서 응원도 있었으나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다. 특히 ‘신과함께’ 2편 개봉도 있는데 너무 다른 이미지는 위험하다는 조언이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도전이 좋다.

“1차적으로 언어를 바꾼다는 것도 도전이었다. ‘공작’ 때 북한말도 어려웠으나 경상도 말은 차원이 달랐다. 또 책이든 영화든 뭐든 한 장르에 빠져있는 스타일이 아니다. 이것저것에 재미를 느낀다. B급 코미디도 완전 좋아하고 완성도 높은 제3세계 영화에도 흥미를 느끼곤 한다. 그러다보니 여러 장르의 대본을 받았을 때 거부감이 없다. 그래서 ‘잘 맞이 않는 옷’이란 관객의 냉정한 평가 실수도 많지만 후회한 적은 결코 없다. 앞서 길을 개척해나간 선배들보다는 손쉽게 시도하는 거니까 엄살 떨 일도 아니다.”

카운터파트 김윤식에 대한 질문이 빠질리 없다. “하루도 쉬지 않고 우직하게 한걸음 한걸음 직진하는 모습이 김형민과 닮았다. 꾸준한 게 제일 무섭다”는 대답을 꺼내 놓았다.

 

 

“앞서 디테일에 신경을 썼던 이유가 별반 액션도 없이 심리적으로 보여줘야 하는 영화이므로 형님과의 밀당이 관객과의 밀당으로 넘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현장에서 막히거나 했던 건 없었다. 톱니바퀴처럼 잘 맞물려 돌아가는 느낌을 얻었다. 나를 바라봐주고, 나의 호흡을 탁탁 건들여주면서 리듬을 생성시켜줬다. 내가 생각하고 준비한 것들이 형님 덕분에 살아 움직이는 연기가 될 수 있었다.”

주지훈은 시간이 허락되면 국내외 여행을 자주 다닌다. 친구들과 주로 간다. 마스크 착용하지 않은 채 걷고, 온전히 자유로워지다 보니 흥미로운 일들이 연이어 생긴다.

내년 1월 방송 예정인 MBC 드라마 ‘아이템’으로 4년 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한다. 김강우 진세연 등과 호흡을 맞추는 SF장르 기대작이다. 이달 말부터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간다. 쉴 틈이 없는 한 해다.

“좋은 작품, 재밌는 작품이 들어오면 체력관리를 잘 해서 해야지 했는데 들어오는 게 다 재미나서 하게 되다보니 다작을 하게 됐고, 쌍천만 배우가 됐다. 관객을 많이 만나고 싶다고 해서 내 뜻대로 되지 않는데 행운이 찾아왔다. 장르, 캐릭터가 겹치지 않게 들어와 줬고 순차적으로 개봉이 됐다. 너무 다행히 ‘신과함께2’ ‘공작’ 모두 관객들이 사랑해줬으니 감사하고 풍성한 한 해다.”

사진= 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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