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몰아닥칠 폭풍우와 같은 고난 그리고 고요한 바다 속을 훤히 비추는 희망의 햇살을 드리운 채 막을 내렸다. ‘인생(Life)’처럼.

 

 

11일 방영된 JTBC 월화특별기획드라마 ‘라이프(Life)’(극본 이수연 연출 홍종찬 임현욱) 최종회는 상국대학병원을 둘러싼 자본권력과 의료진의 팽팽한 대결이 숨 가쁘게 펼쳐졌다.

화정그룹이 영리화 법인 전환을 위한 치밀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며 상국대학병원은 걷잡을 수 없는 파문에 휩싸였다. 지나친 수익 추구라며 화정그룹의 속내를 간파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조남형 회장(정문성)은 상국대학병원 총괄책임자인 구승효 사장(조승우)을 해고 처분하는 것으로 꼬리 자르기를 해 영리화에 대한 비난화살을 교묘히 피해간다.

영리화를 관철하기 위한 조남형 회장의 최강수에 부원장 주경문(유재명)과 원장 오세화(문소리)는 환경부 장관을 면담해 불법 토지거래에 대한 정보를 들이밀며 승부수를 던진다. 해고당한 구승효는 격노한 조회장이 처한 위기를 해결해주는 대신 상국대학병원의 영리화를 막는 데 성공한다.

마지막 근무일, 오세화 원장과 주경문 부원장의 배려로 의사들을 만나게 된 승효는 “5년도 안돼 상국대병원이 부자들을 위한 건강센터로 바뀔 것이란 이야기를 들었다. 이를 받아들일지 막을지 여부는 여러분에게 달려있다. 잠시나마 몸 담았던 상국대학병원, 5년 후 10년 후까지 내가 지켜보겠다”며 “건승하라”고 고개숙여 인사했다.

 

 

이노을은 상국대병원을 그만두고 지방병원 행을 결정했다. 퇴사 전 노을은 병원장을 비롯한 선배들에게 독립재단을 설립해 화정그룹 지배구조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시각 승효는 조회장에게 새 사업을 제안해 다른 사업체의 사장이 됐다. 시간이 지나 승효는 노을이 일하는 지방병원을 찾아가 재회했다.

한편 예진우(이동욱)는 동생 선우(이규형)의 환영을 더 이상 보지 않게 됐다.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진짜 동생 선우와 바다 속을 자유롭게 잠수하며 비로소 행복한 일상을 즐기게 됐다. 상국대병원의 새 사장으로는 조남형 회장의 동생인 재미 심장전문의(이준혁)가 부임해왔다.

지난해 명품 드라마 호평을 받았던 ‘비밀의 숲’으로 ‘괴물작가’이란 영예로운 타이틀를 거머쥔 이수연 작가의 차기작 ‘라이프’는 출발부터 화제작이었다. 배경과 형식에 있어 법정물, 메디컬 드라마라는 차이가 분명함에도 이수연 작가는 복잡한 현실을 통찰하는 시선을 이번에도 보여준다. 그러면서 한결 다층적이고 따뜻해진 느낌이다.

‘비밀의 숲’을 통해 법과 정의의 보루여야 할 검찰을 배경으로 추악한 내부비리, 정치권-재계-검찰 카르텔의 적폐를 파헤쳤던 작가는 이번에도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공공기관 병원을 무대로 벌어지는 무차별적 이윤추구 논리, 인간군상의 이해관계 및 권력투쟁 서사를 입체적으로 풀어냈다. 감정이 거세된 검사(‘비밀의 숲’ 조승우), 20년간 동생의 환영과 함께해온 의사(‘라이프’ 이동욱)처럼 결핍과 비정상성을 지닌 남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남주 판타지나 선악 이분법을 무너뜨리고 시작하는 점 역시 비슷했다.

 

 

‘라이프’에선 무엇보다 신념의 다양한 측면을 조명함으로써 드라마의 깊이감을 더했다. 이로 인해 캐릭터 하나하나부터 결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해석과 여운을 선사했다. 

배우들의 호연 역시 인상적이었다. ‘비밀의 숲’부터 호흡을 다져온 조승우 유재명 이규형이 재회한데다 충무로 연기파 군단인 문성근 문소리 천호진 김원해 염혜란 이상희가 가세했다. 톱스타 이동욱과 라이징스타 원진아는 입지를 더욱 단단히 다졌으며 뮤지컬배우 출신 정문성의 빌런 연기는 압도적이었다.

스릴러, 판타지, 메디컬 등 장르를 휙휙 오가면서 묵직한 주제의식까지 탑재한 어려운 ‘덩어리’를 속도감 있는 진행, 유려한 영상과 음악으로 대중과의 접점을 확장한 연출의 미덕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반면 극에 촘촘하게 녹아들지 못한 로맨스라든가 초중반과 비교해 에너지가 줄어든 예진우 캐릭터는 아쉬운 대목이다. 

우리 사회가 그렇듯 상국대학병원의 문제는 여전히 내연하고 있으며, 어떤 결말을 껴안을지 모른다.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도 사람들은 일하며 사랑하며 분노하며 웃으며 고단한 일상을 살아간다. 어느 새 가슴을 가득 채워버린 각자의 신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진= 씨그널 엔터테인먼트그룹, AM 스튜디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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