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로 환원될 수 없는 죽음을 쫓는 이들의 이야기 ‘죄 많은 소녀’가 집요하고 날카롭게 올 가을 관객들의 폐부를 파고든다. 금방이라도 범람할 것 같이 위태로운 감정선이 스크린 위에 건조한 시선으로 제시된다.
 

영화는 화장품 매장에서 같은 반 친구 영희(전여빈 분)와 한솔(고원희 분) 그리고 경민(전소니 분)이 우연히 마주치며 시작된다. 이날 밤 경민이 실종되고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던 영희는 가해자로 내몰린다. 믿었던 한솔마저 모호한 증언을 하며 영희는 스스로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친다.

영희는 가해자지만 피의자는 아니다. 누구도 영희가 물리적으로 경민을 죽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두 사람의 설명되지 않는 관계, 즉 언어로 정립되지 않는 감정 사이에 ‘어떤 사건’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그리고 모두 영희가 경민을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다고 맹신한다.

어쩌다 영희는 죄 많은 소녀가 됐을까. 이유는 명확하다. 영회를 향해 날선 반응을 보이는 이들은 경민의 주변인들이다. 그들은 어쩌면 경민의 죽음에 일조 했을지도 모를 스스로의 죄의식을 외면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책임을 전가할 대상으로 영희를 지목한다.
 

이들 중에서도 가장 집요하게 영희를 내모는 건 경민 모(서영화 분)다. 경민이는 더이상 말이 없고, 딸의 죽음을 애도할 수 있기 위해서는 납득할 수 있는 정황이 있어야만 한다. 누구도 명확하게 내리지 못할 답을 맹목적으로 쫓는 경민 모는 처절하다 못해 공포를 유발한다.

억울함에 몸부림 치던 영희가 죽음으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려는 사건이 있은 후에야 모두 의심을 내려놨다. 그러나 영희를 향하던 그들의 죄책감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숨죽여있던 영희 안의 분노가 경민 모를 향해 치닫는다.

영화는 설득력 있는 캐릭터들이 극적 흐름을 더욱 풍성하게 이끌고 나간다. 담임선생님(서현우 분)과 형사(유재명 분), 그리고 다솜(이봄 분)은 곁서사를 만들어내며 사건을 한발짝 떨어진 시선에서 바라보게끔 환기시켜 준다.
 

‘죄 많은 소녀’는 흔히 말하는 불편한 영화다. 이는 오래전부터 친숙했던 ‘나’의 자아로부터 출발하는 감정이다. 학교라는 상징적 공간의 특성, 그리고 친구라는 이름이 만들어내는 권력관계 등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환경들이 저변에 깔려있다.

경민의 죽음은 과연 애도로 귀결될 수 있을까. 혹은 멜랑콜리의 상태로 남을 것인가. 그 끝은 극장에서 확인해 보도록 하자. 괴물 신예라는 타이틀로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한 전여빈의 탄생을 알리는 영화이자, 스토리텔러 김의석 감독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죄 많은 소녀’는 오는 13일 개봉한다. 러닝타임 113분.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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