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신예라면 단연 진기주 아닐까. JTBC 드라마 ‘미스티’에서 고혜란(김남주 분)의 친애하는 적 한지원,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통해 혜원(김태리 분)의 순박한 친구 은숙을 소화해냈다.
 

그리고 지난 5월 진기주 생애 첫 공중파 주연작 MBC ‘이리와 안아줘’(연출 최준배/극본 이아람)가 시작됐다. 3%대로 시작한 시청률은 5.9%, 거의 두배치에 육박하며 종영을 맞이했다. 대단히 좋은 성적표라고 할 수는 없지만 주연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준 작품이었다. 드라마 초반 다소 불안정한 연기력에 대한 혹평이 이어졌지만 이를 이겨내고 오롯이 길낙원으로 거듭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사이코패스 윤희재(허준호 분)에게 가족을 잃고, 그의 아들 윤나무(장기용 분)과 사랑에 빠져야 하는 비교적 쉽지 않은 감정선을 연기해야 했다. 연쇄살인의 유가족이 겪고 있는 외상후증후군 그리고 금기된 사랑을 그려내며 적지 않은 심적, 육체력 피로도가 쌓였다.

“초중반에는 외상후증후군을 표현하는 부분도 있어서 찍고 나면 힘이 빠졌어요. 윤희재의 카피캣 염지홍(홍승범 분)이 12년 전 상황 안에 다시 길낙원을 가뒀을 때는 정말 탈진할 거 같았어요. 윤나무가 길낙원 앞에서 칼에 찔려 의식을 잃어버리는 모습을 찍을 때는 아침에 울고, 점심에 울고, 저녁에 울 정도였어요. 그렇게 몇일 찍고 나니까 몸이 아프더라고요”
 

그러나 진기주가 연기하는 길낙원은 회를 거듭하면서 강해졌다. 15회에서는 탈옥해 자신을 납치한 윤희재에게 경멸과 멸시를 말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해져 있었다. 윤희재와 길낙원이 만나야만 이야기가 정리될 수 있다는 걸 진기주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윤희재한테 가까워가는 느낌을 받으면서 우울했어요. 낙원이는 씩씩하고 꾹 눌러담고 해야하니까요. 하루는 낙원이의 조물주인 작가님한테 ‘언젠가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는 순간이 오겠죠’라고 답답한 감정을 풀어놓은 적이 있었어요. 작가님도 (낙원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시다고 뒤에는 풀 순간이 올 거라고 하셨어요. 적절한 타이밍에 답답한 감정을 잘 털어놨다 싶었어요. 조금씩 다른 캐릭터들한테 위로도 받게 되니까 제 기력도 조금씩 더 올라가더라고요. 그 상태로 윤희재를 만나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었던 거 같아서 좋아요”

하지만 상대연기자는 바로 허준호. ‘이리와 안아줘’를 통해 섬뜩한 연쇄살인마 연기로 또 한번 명품 배우를 입증한 기라성같은 대선배였다. 촬영할 때 무섭지 않았냐는 말에도 진기주는 되려 씩씩한 모습을 보였다.

“선배님이 엄청 자상하세요. 물론 리허설을 할 때는 윤희재였지만요(웃음). 제가 과거의 낙원이었으면 무서웠을테지만 12년 동안 단련된 낙원이어서 그런지 무섭기 보다 상대를 경멸하게 되고, 불쌍하게 여기게 되는 것 같았어요. '너는 아무 것도 가진게 없는 인간'이라는 감정만 들더라고요. 그래서 무섭지는 않았어요”
 

진기주가 극중 가장 무섭고 공포스러웠던 순간으로 꼽은 건 염지홍이 12년 전 부모님이 돌아가시던 ‘그날 밤’을 재현한 순간이었다고. 그는 “홍승범씨가 이모티콘으로 망치를 보내요. 다행히 유쾌한 친구라서 작품이 끝난 이후에는 염지홍 말고 홍승범으로 대해주려고요. 종방연 때까지는 ‘염지홍 저리가’ 장난치고 했어요”라고 말했다.

스릴러와 함께 로맨스를 동반한 드라마에서 진기주는 장기용을 만나 전에 없던 절절한 러브라인을 그려냈다. 장애물이 있기에 길낙원과 윤나무의 사랑은 더 애틋하게 시청자들의 마음 속에 남았다. 장기용도, 진기주도 지상파에서 이렇게 큰 타이틀롤을 맡기는 처음이라 부담도 있었다.

“장기용씨도 저도 둘다 처음이다 보니까 입밖으로 말하지 않아도 부담이 느껴졌던 거 같아요. 그런 공감이 있다는 게 가장 큰 무기였던 거 같아요. 장기용씨가 극중 감정소모가 심한 신이 있으면 ‘수고해’하고 응원해줬어요. 장기용씨도 제가 힘들 거 같으면 ‘파이팅’ 해주고. 서로 힘든 걸 알아주는 역할이 있다는 게 큰 의지가 됐어요”

드라마는 어두운 기조를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어갔지만 촬영장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밝았다. 배우들의 SNS로 공개된 종방연 자리만 보더라도 그 에너지가 느껴졌다. 진기주는 “정이 좀 많이 들었던 거 같아요. 가끔은 리허설할 때 일부러 장난친 적도 있어요. 그 순간에는 슬프고 싶지 않아서 슛 들어갈 때만 에너지를 쏟을고요”라고 설명했다.

사실 연기 외적으로도 신경쓸 게 한두가지는 아니였다. 주연이 마냥 화려해보여도 그만큼의 무게가 있는 자리니만큼 진기주로서는 스태프와 촬영장 분위기에도 세심하게 관심을 쏟았다.

“예전에는 선배님들한테 많이 의지를 하면서 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제가 현장에 있는 동료 연기자분들, 스태프 분들이 저한테 기댈 수 있게끔 해야할 거 같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었어요. 하지만 저한테 그런 능력치가 아직 없다는걸 스스로 알고 있고, 그래서 더 노력했던 거 같아요. 열심히 인사하고, 열심히 말도 걸고요”

②에 이어집니다.

사진=싱글리스트DB, 라운드테이블(지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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