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구 삼양동 솔샘로 35길. 그곳에 있는 9평(30.24㎡)짜리 서울 시청이 진정성 정치와 쇼통(Show 通) 사이에서 폭염보다 뜨거운 논란에 빠졌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옥탑방 한 달 살이가 오늘(26일)로 나흘째를 맞았다. 35도는 우습게 넘는 불볕더위에 에어컨도 없는 방에서 생활하며 서민들의 삶을 직접 몸으로 느껴보겠다는 박 시장의 선언은 파격이었다.
삼양동은 생활 기반 시설이 약해 삶터로 삼기엔 불편한 곳이다. 박 시장은 이곳에 살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매일 서울시청으로 출퇴근할 예정이다. 퇴근 후에는 삼양동 주민들과 담소를 나누며 민생을 경청하겠다고 밝혔다. 시장의 옥탑방 생활은 50일간 지속되며 다음 달 18일에 끝난다.
그는 지난 6·13 지방선거 유세 기간에 삼양동을 들렀을 때 '이 동네에 와서 한 달 살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러므로 그의 옥탑방 살이는 공약 이행이다. 몸 고생마저 자처하며 3선 서울시장이 약속을 지키려 노력하는데도 곳곳에서 터지는 반응은 제법 냉랭하다. '보여주기식 정치'라는 것이다.
비판은 박 시장이 옥탑방에서 사는 사람들의 진짜 고충을 짚지 못한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박 시장의 옥탑방에는 취사 시설이 없다. 침대도 없어 박 시장은 자신이 쓰던 이불을 가져왔다. 이 폭염에 에어컨까지 없으니 시장은 선풍기로 열대야를 버티는 중이다.
이런 풍경도 가난한 이들이 겪어야 하는 지긋지긋한 생활의 조각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박 시장에겐 이 시기를 버티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내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믿음이 있고, 현실의 가난엔 미래가 없다. 가난의 세계에선 50일이 지나도 에어컨이 생기지 않고, 오늘의 더위를 버틸 수 있는 희망이 태어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옥탑방 살이는 '체험'으로만 끝나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박 시장은 저소득 계층이 가장 힘들어하는 월세 문제에서 벗어나 있다. 옥탑방 생활은 그 자체로도 힘겹지만 그보다 더 숨통을 조이는 건 매달 돌아오는 월세다. 몇십만원 남짓을 마련하지 못하면 옥탑방에서조차 살 수 없게 된다.
박 시장의 삼양동 옥탑방은 50일 임대에 200만원이다. 단기 임대를 구하기 힘들어 시세보다 비싼 값을 내야만 했다. 임대료는 시 예산으로 계산되기 때문에 멀쩡한 공관을 두고 세금을 낭비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박 시장이 서민들처럼 소득의 30%를 주거비로 사용해야 했다면 이런 공약을 선뜻 내세울 수 있었을까.
그도 이러한 사실들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박 시장은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에어컨 없는 더위를 어떻게 버티냐는 질문에 "저는 한 달 딱 살지만, 매일 이렇게 옥탑방이나 쪽방촌에 지내는 분들도 계신다"고 답했다. 하지만 박 시장이 이 차이와 그 무게를 얼마나 실감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점이 남는다.
박 시장의 옥탑방에 있는 방 두 개 중 하나는 수행비서와 보좌관들의 공간이다. 이들은 돌아가면서 박 시장의 하루를 살핀다. 옥탑방에서 함께 지내며 아침을 챙기는 것도 이들의 업무였다. 지난 24일에 박 시장은 비서관이 사다 준 샌드위치와 우유로 아침을 해결했다. 행정 업무를 넘어 개인적 잡무까지 거들어주는 이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몸으로 느끼겠다'는 말은 공허하게 들린다.
이번 행보가 무의미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박 시장은 대형마트가 들어서고 구멍가게가 사라진 삼양동의 오르막길을 걸으며 자동차 없이 산 아래 사는 사람들의 고민을 생각했고, 장을 보면서 솔샘시장이 높은 기준에 미치지 못해 '인증 시장'에 등록되지 못한다는 점을 알게 됐다.
그러나 행정가의 역할은 세상에 이런 가난이 존재한다고 외치는 데 있지 않다. 시장이라면 제도를 정비하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마련해 사회적 약자들이 난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라고 뽑은 게 아닌가. 옥탑방 살이는 이제 겨우 첫발을 뗐다. 비판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지만, 좋은 행보로 그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길 바란다. 그가 맛본 가난이 시정에 녹아들기를 진실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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