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K-현대무용의 기수로 활약했고 국내 복귀 후 경계를 훌쩍 뛰어넘어 토털 아트로 춤을 재구성해오고 있는 현대무용 아이코닉 스타 차진엽(콜렉티브A 예술감독)이 무대를 활보한다.

 

 

14~15일 대학로 아르코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열리는 ‘톡 투 이고르: 결혼~그에게 말하다’로 춤사위를 펼친다. 2012년 전미숙 안무가에 의해 초연된 작품은 러시아 현대음악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결혼’을 음악으로 사용한다. 사회적 통과의례로 여겨 온 결혼의 의미 변화, 결혼의 형태는 유지하지만 결혼을 통한 유대와 결속은 잃어버린 수많은 관계들, 사랑보다 사회적 필요에 의해 기능적으로 작동하는 오늘날 결혼 생활의 정서 등 결혼에 대한 성찰과 도발이 담겼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인 안무가 전미숙과 사제지간인 차진엽은 스승의 초연 무대에 이어 두 번째 무대에 다시 오른다. 무용수보다 예술감독, 안무가, 연출자로 활동이 잦은 그의 상징과 기호 가득한 유려한 몸짓 그리고 탁월한 표현력을 감상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2012년 초연에 출연했던 무용수들 반 이상이 바뀌었다. 이런 작품은 개개인의 생각이 투영된 대사를 개별적으로 끌어내기도 하고 움직임과 안무를 스스로 창작하기도 해서 누가 하느냐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 기혼 무용수가 결혼 유경험자로서의 생각이 담긴 텍스트를 말했다면 이번에 싱글 정지윤씨는 자신의 입장을 얘기하게 되므로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일 거다.”

연습장면을 담은 몇 장의 사진 컷에서도 존재감이 두드러진다. 불협화음과 변박, 불규칙적인 리듬패턴으로 가득한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은 리스너들에게 난해하기로 악명(?) 높다. 듣기만도 버거운데 이에 맞춰 춤을 춰야하는 무용수들에게는 한계에 도전하는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 단순히 재연이라, 익숙함 때문에 그의 몸짓은 저토록 자연스러우면서 유니크한 것일까.

 

'톡 투 이고르' 무대 위 차진엽(오른쪽에서 두번째)

“처음엔 설레고 흥미로웠으나 연습과정을 오래 거쳐왔기에 유니크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스트라빈스키 곡을 가지고 안무를 한다는 게 안무가에겐 큰 도전이다. 대부분의 클래식 음악은 분석하기에 좀 더 용이한데 이곡은 굉장히 불규칙적이고 다변화해서 음악 구조에 맞춰서 안무를 하는데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든다. 무용수들이 이 음악을 듣고 춤출 때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이유다. 보통은 한번 음악을 이해하면 규칙적 패턴 안에서 춤추기가 쉽다. 하지만 스트라빈스키는 계속 음악에 귀 기울이면서 춤춰야 하므로 무용수에게 있어 큰 도전이다.”

자신의 안무작이 아닌 타 안무가의 작품에 무용수로서 두 번째 서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대한민국 사회의 싱글우먼으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내면과 공명하는 부분이 있어서일까.

“선생님께서 당시 ‘지금 출연하는 무용수들이 더 나이 들기 전에 다시 한번 이 작품을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각자 생각하는 결혼에 대한 생각들이 달라졌을 거고, 교수님도 그때와 지금의 생각이 달라졌을 테니...결혼이 인생에 있어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깊게 고민한 적이 없다. 흘러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선택되는 것이지 않나. 결혼과 비혼, 양쪽의 장단점이 있는 거고. 뭔가를 정해놓고 인생의 목표나 계획으로 삼지 않는 편이다.”

초등학교 시절 발레를 시작, 중고교 시절 발레·한국무용·현대무용을 섭렵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재학 시절부터 지적 호기심이 왕성한 무용수로 여겨졌다. 졸업 후 영국 런던 컨템포러리댄스스쿨에서 현대무용 석사를 취득한 뒤 영국 호페쉬 쉑터 무용단, 네덜란드 갈릴리 무용단 단원으로 활동했다.

 

 

국내 현대무용의 허파 역할을 해오고 있는 LDP 무용단원으로 활약했다. 2012년 아티스트 그룹 ‘콜렉티브A’를 창단했다. 국내외에서 그는 경계를 넘는 다양한 시도와 타 장르와 협업으로 춤 외연을 확장했다. 공연장에서 우두커니 관객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장소 특정적 공연 등을 개최하며 춤 예술로의 관객참여를 적극적으로 꾀했다. 

융복합과 함께 여성은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로 여겨졌다. 트로이의 여인들을 재해석한 ‘쓰리 립스’, 안데르센의 동화 ‘빨간 구두’를 바탕으로 여성의 욕망을 건드린 ‘누가 그녀의 빨간 구두를 훔쳤을까’, 탐욕과 허영에 뒤덮힌 현실을 여성의 시각에서 풍자한 ‘로튼 애플’, 여성 안무가인 자신을 투영시킨 ‘춤 그녀...미치다’, 지난해 춤평론가상 작품상을 수상한 ‘미인- 바디 투 바디’에서는 페미니즘부터 여혐, 비혼 등 다양한 주제를 스펙트럼 넓게 함축했다. 그런 그이므로 올해 우리 사회를 강타한 미투운동을 작품으로 길어 올리진 않을까 궁금해졌다.

“여성을 둘러싼 이슈들은 늘 저변에 깔려있지 않나. 살면서 내가 느끼는 감정들, 여성의 심리나 여성의 몸에 집중한 것들이 어떨 땐 직관적으로 어떨 땐 컨셉추얼한 작품으로 탄생했다. 미투를 비롯해 사회현실에 대한 관심은 개인적으로 많으나 사회 이슈를 굳이 작품으로 다루고 싶진 않다. 예술의 사회적 역할이 많을 텐데 꼭 다큐성을 띌 필요는 없다고 본다. 뉴스처럼 사실적으로 다루기보다 우리는 다른 감성과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다큐멘터리 감독은 되고 싶지 않다.”

차진엽은 “뉴스나 일상이 주지 못하는 감성으로, 삶을 즐겁게 채우는 역할을 하면 되지 않을까”란 말로 예술가의 역할을 강조한다. 사회적 관심은 어렸을 때보다 더 커졌으나 갈급함을 가지고 다른 식으로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내비친다. 완성도에 대한 집착과 더불어.

 

 

안무가(비단 안무가뿐만이 아니라 지휘자, 연출자, 감독 모두에게 해당하지만)의 톤앤매너를 질문했다. 거침이 없다.

“어떤 안무가들은 자기 색이 굉장히 강해서 무용수들에게 철저히 자신의 디렉션을 요구하고 어떤 안무가들은 무용수들이 스스로의 창의력으로 빈 공간을 채워주길 기대하는 경우도 있다. 난 내가 원하는 것들을 무용수로부터 뽑아내기 위해 디렉션을 명확히 준다. 성향이자 작업방식의 차이인 것 같다. 전미숙 선생님의 ‘톡 투 이고르’의 경우 내 파트에서 하는 것들은 거의 다 내 움직임이었다. 내 작품에서 안무하는 것처럼 했고, 선생님은 이를 용인해주셨다.”

학창 시절부터 함께해온 주변 동료, 후배들은 그에 대해 타고난 체력의 소유자라고 입을 모은다. 기운과 에너지가 좋은 그는 어렸을 때부터 항상 바빴다. 그리고 지금까지 바쁘다. 기획, 안무, 타 장르 예술가들과의 교류, 연습, 강의, 방송활동 등 체력과 집중력을 요하는 일들이다.

“모든 것에 흥미가 있어서 이것저것 다하는 편이다. 매체가 중요한 게 아 니라 내용이 흥미로우면 하는 거고, 같이 하는 사람들과 취지가 맞으면 즐겁게 하는 거다. 일상에서도 새로운 공간을 찾아다니거나 돌아다니고 보면서 재미를 느낀다. 그게 작업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 듯하다. 내 작품에는 나의 성향이 고스란히 투영된다.”

상대를 빤히 쳐다보는, 늘 당당하고 유동적인 그래서 다음에 뭘 할 지 궁금해지는 아티스트와의 '스몰 톡'은 그렇게 마무리지어졌다. 

사진 이진환(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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