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k to Igor: 결혼~그에게 말하다’(7월14~15일·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공연을 앞두고 막바지 연습에 한창인 현대무용수 겸 안무가 김성훈(36)을 성수동 소재 싱글리스트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6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려지는 ‘톡 투 이고르’는 러시아 현대음악 작곡가 스트라빈스키 ‘결혼’을 바탕으로 김성훈의 스승인 안무가 전미숙(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이 만든 작품이다. 결혼의 진정한 의미, 결혼 관계에 내재된 혼돈과 광기 등을 혁신적인 춤사위로 구성해 초연 당시 화제를 일으켰다. 이번 공연 포스터에서 드레스 차림으로 격렬한 동작을 취하고 있는 민머리 남성이 바로 김성훈이다.

“‘톡 투 이고르’는 결혼이 의무가 아닌 선택으로 바뀐 시대에 결혼의 의미를 관객뿐만 아니라 원곡 작곡가인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에게 말한다는 점이 독특해요. 스트라빈스키에 대한 추모이자 그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작품이랄까요. 초연 때 무용수 11명 중 4명이 이번에도 참여해요. 각자 생각하는 결혼관을 얘기할 수 있고, 당시와 또 변화한 상황과 에피소드를 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다양한 결혼의 관점을 춤으로 표현해 관객에게 물음표를 던지고 싶어요.”

스트라빈스키 음악은 날카로운 불협화음과 변박, 불규칙적인 리듬패턴으로 인해 무용수들에게는 ‘넘사벽’과 같다. 하지만 수많은 안무가들이 20세기 클래식 음악계 혁신의 아이콘인 그의 음악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고 싶어 달뜬 표정을 짓는다. ‘봄의 제전’ ‘불새’와 같은 작품을 연상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톡 투 이고르' 무대 위 김성훈(오른쪽) 사진/(c)Baki

“솔직히 춤으로서는 두 번 다시 스트라빈스키를 하고 싶지 않아요. 피곤하고 예측 불가능하니까요.(웃음) 처음 그의 음악을 들으면 굉장히 길게 느껴져요. 강약도 엄청 셀뿐더러...하지만 좋아하는 구절이 생기면 계속 귀에 맴도는 게 그의 힘인 듯해요. 영감을 얻을 순 있겠으나 작업을 하는 건 굉장히 힘들죠. 안무는 음악을 꿰뚫어서 해야 하는 작업이니까요. ‘톡 투 이고르’를 준비하면서는 계속 듣고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요. 가요나 팝을 듣고 흥얼거리듯이요. 저희는 몸으로 외우는 게 익숙한 사람들이라 춤을 외우고 나니까 음악이 들리기 시작하더라고요.”

이 작품의 안무가이자 연출가인 전미숙 교수를 보면서 큰 자극을 얻었다. 안무가에게 시대의 영향력이 그 무엇보다 크다는 점부터 시작해 어르신들도 젊은 세대 못지않게 젊은 감각과 도전정신을 발휘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흔한 주제일 수도 있는 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풀이하느냐에 따라 큰 컨셉션이나 이슈가 될 수 있음을 절감했어요. 또한 일반 작품의 경우 주제의식을 쭉 끌고 가는 경향이 대부분인데 이 작품은 정답을 내리기보다는 다양한 생각들을 펼쳐내고 공감하도록 해요. 치유가 될 수도 있고 희망을 주거나 독신주의자들에겐 자신감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무용수들과 안무가의 생각이 ‘콜라보’ 되는 점이 특색이에요. 보통은 관객에게 전달하기 급급하게 마련인데 음악의 주인에게 말하면서 관객에게도 말하는 점도 신선했고요. 저도 안무를 하지만 이번 작품을 하면서 선생님의 새로운 시도에 깊이 큰 자극을 얻었죠.”

김성훈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을 통해 전 세계인의 눈길을 붙든 LDP무용단의 컨템포러리 미디어아트 ‘새로운 시간의 축’ 조안무를 맡으며 다시금 주목받았다.

 

 

한예종 무용원을 나온 그는 2003년 LDP무용단 객원활동을 시작해 이듬해 정단원으로 입단했다. 2009년부터 20016년까지 8년 동안 영국 세계적인 무용단 '아크람칸 댄스컴퍼니' 객원단원으로 활동했다. 이런 이력 때문인지 그의 작품엔 한국과 유럽감성이 적절히 크로스오버 됐으며, 블랙코미디를 활용한 휴머니스트 성향 짙은 작품을 추구한다는 평이 따라다닌다.

관객이 이해하기 쉽고 해학적인 것도 그의 안무를 규정하는 특징 가운데 하나다. 2007년 초연한 ‘블랙코미디’는 사람들이 상처 입는 것은 무엇으로부터 연유되는지를 코믹하고 풍자적으로 그려냈다. 언론보도와 네티즌 악성 댓글로 인해 연예인 자살이 발생했던 무렵이라 이슈가 됐다. 이 작품은 선유도 공원에서의 4시간 야외 버전과 30분 분량의 극장 버전으로 관객과 만났다.

또한 셰익스피어 ‘오셀로’를 모티브 삼아 현시대 사회적 사건과 관계 안에서 보여지는 인간의 추한 본성을 표현한 ‘그린 아이’, 독재자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인간상은 무엇인지를 위트와 휴머니티로 다룬 김성훈댄스프로젝트의 ‘노필름’, 마블 히어로영화들이 득세하는 시대에 지금 시대의 영웅의 의미를 묘파한 ‘우리는 영웅을 믿지 않는다’, 힙합 대세 시대에 록음악의 향수를 소환한 ‘스멜 라이크’ 등은 현실과 맞닿은 소재로 격한 공명을 일으켰다.

“인간의 삶이죠. 제 작품의 주제의식은 사람들 생활에서 많이 나오는 듯해요. 그래서 트렌디한 이슈들을 리서치하고 공부를 많이 하죠. 제 작품을 통해 대화하듯이 공감대가 형성됐으면 해요. 무거운 주제를 재밌게, 블랙코미디처럼 하는 걸 좋아하고요. 관객들이 희로애락을 느끼도록, 여운이 남는 걸 추구하죠. 명작 영화를 재관람하듯 제 작품을 또 보고 싶어지게 하고 싶은 거죠.”

 

 

김성훈 스스로 현대무용만 고집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대중적 춤과 다양한 것들과의 결합을 중요시한다. 안무가로서 일일이 모든 디렉션을 주는 게 아니라 댄서들의 표현력에 비중을 많이 둔다. 자연스레 무용수에 따라 작품이 톤과 내용이 바뀌는 경우가 많다.

“생각의 풍부함을 좇아서이기 때문이죠. 나 혼자 하는 게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느낌과 의지를 중요시여기거든요. 주제가 정해지면 작품에 따라 무용수들을 캐스팅하는데 그들로부터 배우기도 하고 영감도 얻고 그러죠. 무대 위 나의 표현력이 중요한 건데 그걸 잘 살리려면 스타일을 굳히는 안무가보다는 무용수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 안무가가 더 적합하다고 여겨요.”

김성훈은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안무가이기보다 매번 다르게 해보려고 노력하는 안무가다. 변화에 대한 욕망이 이글거려서다.

“확고한 색깔과 스타일을 가진 무용수, 안무가, 무용단체를 너무 좋아해요. 하지만 다른 것도 하나의 ‘스타일’이지 않을까요? 빨강 노랑 파랑 등 정통적인 것만을 색깔이라고 말하지 않고 미처 이름 붙여지지 않은 것도 색깔이라고 하듯이 변화하고 특정 스타일이 없는 것도 스타일이지 않을까 싶어요. 예술이라는 게 느끼는 걸 더 갈망하는 시대인 듯해요.”

사진 이진환(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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