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평등의 시대에 살면서도 일상에서 습관적으로 성차별적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단어 하나가 생각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면 행동이 바뀌어진다.

서울시와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성평등주간(7월1~7일)을 맞아 5월30일부터 6월11일까지 ‘성평등 언어사전 시민 참여 캠페인’을 진행했다. 이 캠페인은 직업, 업무 용어, 신조어, 외래어 등에서 성차별적 표현을 발굴해 개선하자는 취지로 이뤄졌다. 시민들의 제안은 608건이나 들어왔다. 서울시는 전문가 자문회의를 꾸려 시민들의 제안을 검토한 뒤 개선이 시급한 성차별 언어 10가지를 선정해 ‘서울시 성평등 언어사전’ 결과를 29일 발표했다.

 

지난 3월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18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34회 한국여성대회'/사진 연합뉴스

시민들의 제안 608건 중 50건 접수돼 두번째로 많았던 지적은 ‘어떤 일이나 행동을 처음 한다’는 의미로 붙이는 '처녀'를 '첫'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민들은 “처녀작을 총각은 못 만드나요?”라며 ‘처녀’라는 표현이 성차별 언어라고 지적했다. 자문회의 전문가들은 ‘처녀작’ ‘처녀출판’ ‘처녀비행’ 등은 ‘첫 작품’ ‘첫 출판’ ‘첫 비행’ 등 개선할 표현으로 선정했다.

성차별적 의미가 담긴 단어들에 대한 시민들의 개선 요구도 많았다. 여학생이 다니는 학교에만 ‘여자중학교(여중)’ ‘여자고등학교(여고)’라는 교명을 붙이는 것이었다. 남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에 ‘남자중학교(남중)’ ‘남자고등학교(남고)’라는 교명을 붙이지 않는 것처럼 ‘○○중·고등학교’라고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구 감소로 인해 최근 부쩍 많이 쓰이는 단어 ‘저출산’(低出産)은 아기가 적게 태어난다는 의미인 ‘저출생’(低出生)으로 쓰는 게 적절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저출산’에 쓰이는 ‘낳을 산(産)’자는 여성이 아기를 적게 낳는 것을 뜻해 인구문제의 책임이 여성에게 있는 것으로 오인될 소지가 있다.

어린 아이를 태워 밀고 다니는 수레를 뜻하는 ‘유모차’(乳母車)에도 ‘어미 모(母)’자가 포함돼 여성에게 육아 책임이 있다는 의미가 내포돼있다. 서울시는 유아가 중심이 되는 표현 ‘유아차’(乳兒車)로 개선하자고 했다.

여성의 신체 기관인 ‘자궁’(子宮)도 성차별적 언어로 선정됐다. ‘자궁’(子宮)에 쓰이는 한자를 ‘아들자’(子)가 아닌 ’세포 포’(胞)를 써 ‘남자 아이를 품은 집’이 아닌 ‘세포를 품은 집’으로 바꿔 부르기로 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상태를 가리킬 때는 ‘미혼’(未婚)이 아닌 ‘비혼’(非婚)이 올바른 표현이다. 결혼을 상황에 떠밀려 하고 안하는 사안이 아니라 개인의 주체적인 선택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을 가리키는 3인칭 대명사 ‘그녀’도 성차별 언어로 선정됐다. 영어 ‘She’를 번역한 일본어 ‘피녀’(彼女)가 어원인 이 단어는 남성의 입장에서 여성을 지칭하는 표현이 된다. 시민들은 ‘그남’이라는 말이 없듯 ‘그녀’ 대신 ‘그’를 써야 한다고 지적했고, 전문가들은 여성을 대명사로 지칭할 때 ‘그’ 또는 ‘그 여자’가 적절한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성범죄 등에 악용되고 있는 단어인 ‘몰래카메라’를 범죄임이 명확한 ‘불법촬영’으로, 가해자 중심의 용어 ‘리벤지 포르노(Revenge Porno)’는 ‘디지털 성범죄’로 바꾸자는 의견도 성평등 언어사전에 반영됐다.

남편 쪽 친척들만 높여 부르는 '아주버님' ‘도련님’ ‘서방님’ ‘아가씨’ 등 가족관계 표준어 호칭이나 여자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미혼모’라는 말들도 성차별 언어라는 지적이 많았지만 대체 용어가 마땅치 않아 논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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