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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성 칼럼] 쥴리의 꿈, 애처롭지만

기사승인 2021.07.19  14:3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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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의 검투사 스파르타쿠스는 동료들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고 16세기 조선의 임꺽정은 산적 두목으로 황해도 일대를 횡행하다가 처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두 사람 다 승산이 있어서 시작한 반란이 아니다. 견디다 못 해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도마 오른 고기의 저항이었다.

혁명을 일으켜서 나라를 통째로 뒤엎으면 몰라도 신분 사회에서 신분의 벽을 뛰어넘기란 비단의 실이 자기 위치를 옮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승강기에 먼저 탄 사람이 문이 빨리 닫히기를 바라듯 기득권을 차지한 상류사회가 아래 것들이 올라올 수 있는 사다리를 절대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막힌 세상에도 한 가닥 숨통은 있었다. 구파발 인근에 인현왕후 교전비로 궁중에 들어갔다가 숙종의 성은을 입은 최 무리의 친정 일가의 선영이 있다. 딸 덕에 졸지에 임금의 장인, 외조부가 된 최 씨 일가의 위풍당당한 선영은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는 말이 아주 빈말이 아님을 증언하고 있다.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여자가 신분의 벽을 뭉갤 수 있는 지존을 만나면 본인은 물론 일족의 신분이 급상승한다. 왕실, 귀족, 상류사회의 며느리 간택 절차가 유난히 까다로운 것은 혼맥을 통한 스크럼 짜기도 있지만 신분의 벽에 생길 수 있는 틈을 차단하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1958년까지 영국 왕실의 연례행사였던 버킹엄궁전 무도회는 최상층 상류사회 자녀들끼리 짝짓기 행사의 하나였다. 이 무도회는 계급사회를 영속화한다는 비판이 일어 59년에 중단되었는데 만일 계속되었더라면 찰스 황태자의 아들인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의 2011년 결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어머니가 항공사 승무원 출신인 케이트가 궁전의 무도회에 초대받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영국에서 신분의 벽이 사라진 건 아니다. 윌리엄 왕자가 케이트 미들턴을 만난 곳은 영국 최고의 엘리트 학교인 세인트 앤드루스 대학이다. 궁정 무도회에 아무나 참석할 수 없듯이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명문대학에서 누가 누구를 만난들 상류사회의 동류교배가 아니랴.

2차 방어선인가? 김건희 씨를 옹호하는 편에서 ‘쥴리면 어떠냐’는 말을 띄웠다. 쏟아지는 ‘쥴리 의혹’을 신분 사회 발상으로 치부하는 역공일 수도 있다. 후자라면 일리 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배우자의 출신을 따지랴. 소크라테스에게 수사학을 가르쳤다는 고대 그리스 ‘아스파시아’(Aspasia)는 요즘으로 치면 룸살롱 마담이었다. 그가 운영하는 살롱에는 소크라테스 등 당대 명사들이 드나들었는데 페리클레스 황제도 단골손님으로 드나들다 죽을 때까지 동거했다.

아테네 민주정의 전성기였다는 페리클레의 선정은 아스파시아의 역할이 컸다는 평가인데 펠레폰네소스 전쟁 희생자를 위한 추도사 중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노력하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라는 명구도 아스파시아의 대필이라고 전해진다.

쥴리로 지목받는 김건희 씨. 영부인 후보에 오르기까지 신분 상승을 위한 그의 노력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러나 양재택, 윤석열로 이어지는 실세 검사들의 비호를 받으면서 어머니 최은순 씨와 함께 벌였다는 주가조작 모해 위증 등 쏟아지는 의혹들을 보면 황제의 자문역, 아스파시아의 지성도 아르헨티나 민중을 울린 에비타의 감성도 하다못해 상전을 위한 일념으로 용종을 잉태한 최 무수리의 착한 심성도 갖추지 못한 것 같다.  

김재성 주필 monster9191@hanmail.net

<저작권자 © 싱글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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