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에 이어서...

‘빛나는 순간’에서 고두심이 맡은 진옥은 해녀다. 주변 사람들 사이에선 거침없는 매력을 뽐내지만 몸이 아파 누워있는 남편을 생각하면 한없이 마음 약해지는 사람이 바로 진옥이다. 고두심은 그런 진옥을 ‘여자’라고 강조한다. 사랑 받고 사랑 줄 수 있는 존재 말이다.

“제 나이가 70인데 여자라는 건 못 놓겠어요. 해녀가 억척스럽고 강인하다고 알려졌지만 어찌됐든 여자잖아요. 직업과 나이는 중요하지 않아요. 여자는 나이가 상관없어요. 저도, 진옥도, 해녀도 모두 같은 여자예요. 언제든 사랑을 받길 원하고 소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죠. 그런 마음으로 진옥을 연기했어요.”

“해녀를 연기하면서 체력적으로 정말 힘들었어요. 저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들도 망사리(해녀들이 채취한 해산물을 넣어두는 그물망)을 드는 게 어려울 거예요. 또한 바다에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았죠. 어렸을 때 친구들과 놀다가 파도에 휩쓸려서 죽을 뻔 했거든요. 그 트라우마가 있어서 전도연 배우의 엄마로 나온 영화 ‘인어공주’를 찍을 때도 물에 들어가는 장면이 있는 걸 못 찍었어요. 결국 대역을 썼죠. 이번에는 어떻게든 제가 해야했어요. 트라우마를 없애고 싶었죠. 연습도 많이 했고 해녀 삼촌들이 많이 도와줘서 어느 순간부터 바다에 있는 걸 즐기게 됐어요.”

고두심은 24일 ‘빛나는 순간’으로 제18회 아시안 필름 페스티벌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1972년 데뷔 후 49년 동안 연기생활을 하며 7번의 연기대상, 공중파 방송 3사 대상을 모두 휩쓴 유일한 배우이자 최다 수상자인 그는 대중의 영원한 대한민국 대표 배우로 기억되고 있다. 최근엔 MBC에서 ‘다큐플렉스-전원일기 2021’을 방송하며 고두심의 대표작 ‘전원일기’를 다시 한번 떠올리게 했다. 그가 생각한 가장 ‘빛나는 순간’은 언제였을까.

“배우로서 가장 빛났던 순간은 연기상을 탔을 때, 작품 하면서 희열을 느낄 때,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을 때였어요. 인간 고두심에겐 엄마가 돼서 아이를 낳았을 때 느낀 신비로움이 빛난 순간이었죠. 임신한 뒤 주변 사람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세상에 아이를 탄생시켰을 때 그 찬란했던 순간을 정말 잊을 수 없어요. 이 작품을 하면서 ‘나의 빛나는 순간은 언제였을까’ 생각해보게 됐어요.”

“최근에 ‘전원일기 2021’이 시작돼 첫 회를 봤는데 세월의 흔적만 보여주는 것 같아서 약간 씁쓸했어요. 오랜만에 박순천, 조하나, 유인촌 씨를 만나서 좋았어요. (김)혜자 언니가 ‘과거는 과거대로 놔두지, 이거 왜 한다고 했어. 나 하기 싫었어’라고 하셨죠. 그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시청자분들에게 ‘전원일기 2021’이 어떻게 다가오셨을지 모르겠어요. 앞으로 회차가 더 있으니까 조금 더 의미있는 내용으로 방송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영원한 ‘국민 엄마’ 고두심은 여전히 하고 싶은 연기, 작품이 많다. 그는 주어진 것을 열심히 하면 언젠가 기회가 올 것이라고 믿는다. 70의 나이에도 그의 연기 열정은 불타오르고 있었다. 앞으로 고두심이 로맨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를 통해 나이를 잊게 만드는 연기를 선보여주길 기대해본다.

“배우는 항상 연기 고민을 할 수밖에 없어요. 어떤 역할을 하고 싶다고 해도 원하는대로 배역이 따라오는 게 아니잖아요. 배역이 주어지면 고두심이란 사람의 색깔을 지워내고 어떻게 그 인물에 다가갈 수 있을지 고민하죠. 여배우든 여자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요. 언제든지 기회가 오면 표현을 잘 할 수 있는 에너지를 다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예쁘고 흔치 않지만 특별한 영화를 맡길 바라죠. 제 나이가 70이지만 로맨스 영화를 찍는 기회가 온 것처럼 특별한 순간은 언젠가 찾아올 거예요.”

“요즘 가장 행복한 일은 손주 보는 것이죠. 배우 같지 않은 이야기지만.(웃음) ‘전원일기’ 할 때 김혜자 언니가 ‘내 손주가 너무 예쁘다’고 하셨어요. 그때는 왜 이 언니가 손주 얘기만 하나 싶었거든요. 이젠 제가 그러고 있더라고요. 지금 제 삶이 손주로 인해 너무 행복하답니다.”

사진=명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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