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를 사로잡은 한국 이민자들의 이야기가 찾아온다. 26일 온라인을 통해 3월 3일 개봉하는 영화 ‘미나리’ 화상 기자 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정이삭 감독과 주연배우 스티븐 연, 한예리, 윤여정이 참석해 기자들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미나리’는 희망을 찾아 낯선 미국으로 떠나온 한국 가족의 아주 특별한 여정을 담은, 2021년 전세계가 기다린 원더풀한 이야기다. ‘문유랑가보’로 제60회 칸영화제에서 황금 카메라상,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의 후보에 오르며 영화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정이삭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워킹 데드’ 시리즈, ‘옥자’ ‘버닝’을 통해 세계적인 배우로 거듭난 스티븐 연이 가족을 위해 농장에 모든 힘을 쏟는 아빠 제이콥 역으로 분했으며 영화 ‘해무’ ‘최악의 하루’와 드라마 ‘청춘시대’ ‘녹두꽃’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에서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대중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해온 한예리가 낯선 미국에서 가족을 이끌며 다독여주는 엄마 모니카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할머니 같다’는 게 뭔지 모르겠지만 가족을 사랑하는 방법은 잘 아는 할머니 순자 역은 영화와 드라마, 최근에는 예능 tvN ‘윤스테이’까지 오가며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한 대한민국 대표 배우 윤여정이 맡았다. 여기에 할머니와 최상의 티키타카를 선보이는 장난꾸러기 막내 데이빗(앨런 김), 엄마를 위로할 줄 아는 속 깊은 딸이자 어린 동생의 든든한 누나 앤(노엘 케이트 조)까지 치열한 경쟁을 통해 캐스팅된 아역 배우들이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제78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외국어영화상, 제27회 미국배우조합상(SAG) 앙상블상-남우주연상-여우조연상,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 작품상 포함 10개 부문 노미네이트 등을 기록한 ‘미나리’는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 후보 지명을 노리고 있다. 특히 윤여정은 26일 기준 오스카 시즌 여우조연상 26관왕에 올라 한국인 첫 오스카 배우 부문 노미네이트 가능성을 높였다.

엄청난 수상 행렬에 정이삭 감독은 기쁜 마음을 드러내며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예요. 많은 호평을 받는 자체가 놀랍고 신기해요. 저희 영화가 많은 관객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 건 제 이야기, 이민자 이야기, 그 시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가 아니라 보편적인 인간 관계를 잘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제이콥 가족이 겪는 일을 관객들도 공감한다고 느꼈어요. 특정 나라, 인종은 문제가 되지 않죠. 저희 배우들이 너무 훌륭했어요. 깊이 있는 연기를 선보였어요. 모든 배우들이 이 스토리에 녹아들었죠”라고 전했다.

수상 행렬 중심에는 윤여정이 있다. 그는 “26관왕 했다고 하는데 상패는 하나만 받았어요. 솔직히 실감이 안 나요. 나라가 크니 시상식도 많다는 생각이 들었죠”라며 ‘미나리’를 경악케 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는 “선댄스영화제에서 사람들이 좋아해 놀랐어요. 저는 처음 영화 볼 때 스티븐과 예리, 그리고 제가 뭘 잘못했는지만 봤어요. 정이삭 감독이 무대에 올라갔는데 다들 기립박수를 치더라고요. 그때 울었어요. 저는 나이 많은 노배우잖아요. 젊은 사람들이 뭘 이뤄냈을 때 장하고 애국심이 폭발해요. 제가 상을 몇 개 받았다고 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죠. 이걸 상상하고 영화를 만들지 않았어요”라며 작품에 애정을 드러냈다.

제이콥처럼 이민자인 스티븐 연은 이번 영화에 배우, 제작자로 참여했다. 그는 “저희가 모든 걸 함께 잘 해낼 수 있었던 감독님 덕분이었어요. 그리고 훌륭한 배우들과 함께 했기 때문이죠. 모두가 이 작품을 위해 헌신했어요. 훌륭한 시나리오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배우들이 노력했어요. 한예리, 윤여정 선생님, 앨런, 노엘 모두 위대한 것들을 같이 만들어간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마치 가족 같았어요”라며 함께 동고동락한 배우, 스태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보냈다.

이어 “저 또한 이민 가정에서 자랐고 부모님과 4세 때 미국으로 갔어요. 제이콥 역은 진실됐고 대사가 많지 않지만 현 상황을 설명해줬죠. 이 영화를 통해 아버지 세대를 이해할 수 있었어요. 1세대와 2세대의 미묘한 갈등이 있고 문화적, 언어적 장벽도 저희 둘 사이에 있었죠. 아버지라는 사람에 대해 ‘미나리’에 참여하며 알게 됐어요. ‘내가 내 아버지와 닮았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아저씨의 모습을 연기하긴 싫었어요. 그때 살아간 제이콥, 그리고 제가 생각한 제이콥을 그리고 싶었어요”라고 자신의 이야기를 밝혔다.

영화는 제이콥과 모니카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만큼 스티븐 연, 한예리의 케미가 중요했다. 스티븐 연은 “자연스럽게 연기가 나왔어요. 예리 씨는 진솔된 배우였죠. 제이콥과 모니카가 어떤 부부였는지 이야기를 했는데 항상 서로 생각이 같진 않았어요. 하지만 좋은 다름이었다고 생각해요. 각자의 생각을 존중하고 이해해줬죠. 예리 씨와 했던 신 모두 좋았어요. 특히 집 안에서 다투는 신이 있는데 NG 없이 한방에 찍었어요”라며 한예리를 치켜 세웠다.

한예리 역시 “스티븐은 솔직하게 필요한 것들, 무엇을 원하는지 다 말해줬어요. 이 사람이 진실된 배우라는 걸 알게 됐죠. 저는 스티븐에게 느낀 만큼 리액션하면 됐어요. 최고의 파트너였어요”라며 “촬영을 끝내고 먹던 음식, 그 순간들이 가장 그리워요. 다들 너무 보고 싶어요. 빨리 코로나가 괜찮아지면 밥 한 끼 하고 싶어요”라고 팀 미나리가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신스틸러는 단연 순자 역을 맡은 윤여정이다. 오스카 시즌 26관왕이 말해주듯 윤여정은 영화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뽐낸다. 그는 “정이삭 감독과 작업하며 행복했어요. 모든 배우가 똑같이 느꼈을 거예요.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니 그의 할머니 흉내를 내야 되냐고 물어봤는데 그렇게 하지 않다고 된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자유를 얻었어요. 제가 코믹하게 등장했다고 하는데 제이콥의 집이 정상적이진 않잖아요. 장모님, 모니카의 엄마 순자의 마음은 그 상황에서 조금 분위기를 환기시키려고 했을 거예요. 그래서 웃기게 보였나봐요”라고 전했다.

이어 ‘밤을 씹어서 데이빗에게 주는 장면은 제 경험에서 나온 아이디어였어요. 또 한국 할머니들은 손자 두고 바닥에서 자잖아요. 그래서 정이삭 감독에게 말했더니 ‘그럴까요?’라고 한 적이 없었어요. 제 말을 수용해주고 바로 세트를 바꿔줬죠. ‘원더풀 미나리’는 아마 순자 나이대가 되면 ‘원더풀’이란 말을 많이 쓰지 않을까 싶어서 이야기했죠. 말하다보니 제가 아이디어 낸 게 많네요?”라고 해 웃음을 유발했다.

정이삭 감독은 한국 이민자의 이야기, 한국적인 요소, 당시 미국 생활을 영화에 넣으려고 노력했다. 그는 “이것들이 정말 중요했다. 사전에 조사를 많이 했다. 이용옥 미술감독이 디테일한 부분을 신경 써 많은 도움을 줬다. 무엇보다 배우들이 그 당시의 정서, 감정을 잘 표현해줬다. 연출하며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한 영화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아티스트로서 역량을 보여주는 것이다. 제가 만든 게 아니라 모두가 함께 만든 것이다”고 전했다.

그는 “제가 인천 송도에서 교수 생활을 했었어요. 창밖을 보면 바닷가에서 나이 드신 분들이 조개를 캐시더라고요.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죠. 할머니는 과부로 사시면서 제 어머니를 홀로 키우셨어요. 할머니가 아니었다면 제가 한국에 와 교수 생활을 할 수 있었을지 생각이 들기도 해요. 할머니 이야기만 하면 자꾸 눈물이 나요”라며 뭉클해 했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부화장 신이 마지막 촬영이었는데 스티븐, 예리 배우와 함께 부등켜 안았죠. 모두가 박수를 쳐줬다. 힘든 순간에도 가족의 마음으로 해낸 느낌이었어요”라는 정이삭 감독의 말에 윤여정은 “제가 다른 배우들보다 일찍 끝났어요. 정이삭 감독이 크루를 다 제 집에 데려와 큰절을 시켰어요. 그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어요. 다들 절을 해서 사진 찍을 사람도 없더라고요”라고 해 이들의 케미를 엿보게 했다.

“저희 영화는 식탁 같아요. 언제든지 관객분들이 식탁에 모여 맛있는 음식을 먹듯 영화를 즐겨주셨으면 좋겠어요”라는 정이삭 감독의 말처럼 ‘미나리’가 미국을 넘어 한국에서도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사진=판씨네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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