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에 이어서…

한지민은 헤어스타일부터 푸석한 피부, 시크한 말투까지 조제로 완벽하게 벼신했다. 그는 “조제는 어딘가에 살고 있는 사람 같았어요”라며 평범한 인물로 보여지길 원했다. 그렇게 조제는 한지민의 마음 속으로 들어왔다.

“조제의 겉모습을 의도해서 보여주면 안 되겠다고 판단했어요. 초반에 조제가 덥수룩한 머리 속에 얼굴을 감추는데 조제의 얼굴을 잘 담지 않으려는 김종관 감독님의 생각이 있으셨죠. 제 머리는 따로 스타일링하지 않았어요. 피부도 부드러움보다는 거친 느낌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해서 자연스럽게 뒀죠. 거친 피부는 조제의 쓸쓸함을 표현하죠. 조제가 영석(남주혁)을 만난 뒤 그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면서 따뜻한 빛이 얼굴을 감싸요.”

“조제는 영석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 오랜 시간을 들였어요. 저도 사랑 앞에서 겁내고 두려웠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조제의 마음이 이해가 됐어요. 그런데 조제가 영석을 담담하게 보낼 때는 부러웠어요. 한지민의 이별 방식과는 달랐거든요. 저는 최근 할머니를 떠나보냈는데 그 시간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어요. 지금도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느껴지고 빈자리가 생각나요. 제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칠 정도였죠. 저였으면 영석이 떠나는 걸 두려워했을텐데 조제는 그렇지 않았어요. 조제에게 그런 점은 배우고 싶어요.”

이야기를 계속 하다보니 한지민은 어느새 조제와 자신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닮은 점을 찾기도 하고 부러운 점도 하나씩 꼽았다. 그러면서 한지민은 자신의 과거를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그에게서 조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저는 20대 때 연기를 계속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저의 부족함으로 인해 현장에서 다들 작업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완성도가 떨어지는 걸 힘들어했거든요. 잘해내고 싶은 욕심보다 겁이 더 많았죠. 그래서 마냥 30대가 되고 싶었어요. 그때가 되면 ‘발전하고 나아지겠지’라는 생각 때문에.”

“당시 조제처럼 집 생활을 많이 했어요. 낯가림을 떠나서 어떠한 곳에 자리한다는 것 자체가 겁이 났죠. 작품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는 게 전부였고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었어요. 돌아보면 진짜 아무것도 안 했구나 싶어요.(웃음) 30대부터 많은 경험을 해보려고 했어요. 지금은 제가 하고 싶은 건 다 경험하는 편이에요. 과거는 조제처럼 저란 사람을 가뒀지만요.”

어느덧 한지민은 데뷔 18년차가 됐다. 데뷔작 ‘올인’부터 ‘조제’까지 쉼없이 달려오며 스크린, 브라운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인정하는 배우가 됐다. ‘미쓰백’으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은 건 한지민의 연기력에 방점을 찍은 일이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찾고 싶어했다.

“’올인’ 오디션을 보고 참여하게 된 후 제가 연기적으로 도움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어요. 영화를 하면서 연기에 재미를 들이게 됐죠. 그런데 비슷한 캐릭터, 비슷한 장르를 하게 되면서 좌절을 맛보기도 했어요.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게 답이 아니더라고요. 그렇다면 드라마, 영화에서 역할이 크지 않아도 새로운 걸 할 수 있는 걸 찾아보자고 다짐했죠. 한발짝 뒤에서 다른 배우들 연기하는 것도 보고 다른 장르 안에 들어가보면서 고민들이 해결되더라고요.”

“한번은 화보 촬영을 하는데 예쁜 사진만 담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졌어요. 새로운 얼굴을 발견하는 작업 또한 저한테 소중하니까요. 저도 모르게 나온 제 얼굴을 연기적으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저는 제 안에 감춰진 한지민의 새로운 면을 앞으로 계속 찾아나갈 거예요.”

사진=BH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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