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텀싱어3’의 감성테너로 얼굴을 익히고, 크로스오버 무대 ‘연’으로 목소리를 각인한 청년 성악가 장주훈(30)을 만났다. 훤칠한 키, 수려한 외모의 청년 성악가가 토해내는 빛바랜 노스탤지어와 선명한 블루프린트가 쉼표 없이 떠다닌다.

휴전선에 인접한 강원도 인제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피아노를 전공한 누나를 둔 그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어렸을 때부터 음악학원에 다니며 피아노, 바이올린, 플루트를 배웠다.

12세 무렵까지 교회에서 노래를 불렀다. 경연대회에 솔로로 출전해 “잘한다” “소리가 예쁘다”란 말을 줄곧 들었다. 변성기가 오면서 소년은 노래를 멈췄다. 고2 때 대학 진학을 위해 노래를 다시 시작했다. 주말마다 인제에서 서울행 고속버스를 타고 스튜디오에서 1대1 레슨을 받았다.

“노래는 원래 좋아했는데 좋은 대학을 가고 싶어서 선택한 거예요. 내 성적에 목소리를 더한다면 공부만으로 갈 수 있는 대학보다 더 좋은 데를 갈 수 있겠다 판단한 거죠. 불순한(?) 의도로 음악을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너무 좋아졌어요. 성악가가 객관적으로 좋은 직업군은 아니에요. 너무 문이 좁아요. 성악가로 데뷔해서도 자신의 생계를 꾸려갈 수 있는 이는 0.1%도 안 될 거예요. 예술가들 대부분이 그렇듯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태어나도 음악을 할 거 같아요.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간다는 만족감 때문이지 싶어요.”

서울대 음대 재학 당시 남성 4중창단을 결성해서 활동을 잠시 했다. 주로 행사에 출연해 노래 부르는 정도였다. 사명감 없이 시작했는데 멤버들 모두 음악에 대한 욕심이 있어서 시간 내 연습하고 화음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너무 즐거웠다. 솔로 못지않게 좋았던 기억이 ‘팬텀싱어3’ 출연으로 이끈 이유 가운데 하나다.

 

대학원 재학 중 유학을 결심했을 때 최측근들은 한결같이 독일행을 권유했다. 독일 가곡(리트)에 심취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선택은 미국 뉴욕이었다.

“그때는 세계에서 제일 큰 음악시장을 경험해보고 싶었고, 다양한 음악을 배우고 싶었어요. 뉴욕의 음대에는 명성자자한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교수진이 포진해 있거든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도 있고요. 영어도 배워보고 싶었어요. 뉴욕에 2년 정도 체류하면서 소망했던 것들을 누린 거 같아요. 시간이 나면 제가 좋아하는 덤보와 윌리엄스버그에 들르며 뉴욕의 낭만을 만끽했고요. 요즘은 리트의 본고장에 가서 공부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요.”

코로나19 탓에 뉴욕의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지만 한국에서의 일정이 빼곡하다. 올해 8월 ‘팬텀싱어3’ 참가자 7인이 크루 개념으로 모인 ‘판타스틱 콘서트’를 4회 진행해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또 유튜브 방송에서 오스트리아 빈 시립음대에 재학 중인 피아니스트 유건우(23)와 콜라보를 하면서 소중한 인연을 맺었다. 리트에 보다 심층적으로 접근하고, 가사를 이해하기 위해 평소 독일 문학작품을 즐겨 찾아보는 장주훈은 틈날 때마다 단어의 차이와 뉘앙스를 독일어에 능숙한 유건우에게 물어본다. 피아니스트이면서 그의 독어 선생님인 셈이다.

“처음 만나 곡 이야기를 나누다 둘 다 독일 가곡을 너무 사랑함을 확인하게 됐어요. 리트를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연주하는 성악가나 피아니스트가 별반 없거든요. 리트는 성악에서도 비주류에 속하니까요. 유튜브 채널에서 ‘시인의 사랑’ 중 몇 곡을 함께 연습하고 연주하다가 같은 소속사에 적을 두게 되고, 제 데뷔앨범과 리사이틀의 피아노 협연자로까지 인연을 이어가게 됐어요.”

이달 부산, 대전, 서울 등 3대 도시에서 진행할 리사이틀의 1부는 신보에 수록된 슈만 ‘시인의 사랑’ 16곡을 모두 부른다. 2부는 ‘연’을 포함한 한국 가곡과 친숙한 오페라 아리아를 들려줄 예정이다.

“뭔가 보여준다기보다 음악에 푹 빠져 있을 때 음악이 나한테서부터 나온다고 생각해요. 쇼오프하는 게 아니라 내가 제일 집중했을 때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다행히 프로그램이 제가 좋아하는 곡들로 꾸려져 더 진심으로, 무대에 몰입해서 노래할 수 있을 거 같아요. 한편으론 힘든 코로나19 상황에 공연을 여는 게 죄송스러워요. 하지만 방역수칙 등 대비를 잘하고 있으니 안심하고 오셔서 위로를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내 노래가 위로가 됐으면 좋겠거든요.”

학부와 대학원 내내 사사한 박세원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를 통해 노래뿐만 아니라 인격적으로도 큰 배움을 얻었다는 장주훈은 “선생님 같은 삶을 살고 싶다”고 고백했다. 30대에 접어든 그가 꿈꾸는 음악가상은 무엇일까.

“본질을 잊어버리지 않는 음악가겠죠. 내가 사랑해서 음악을 하는 건데 보여주기식 혹은 목표상실이 아니라 순수성을 지키는 음악가가 되고 싶어요.”

에필로그- 강원도 인제의 산골에서 자라 스키 타는 걸 즐긴다. 여름엔 자전거 타기에 아낌없이 시간을 낸다. 리사이틀을 성공리에 마친 뒤 물 만난 고기마냥 눈 쌓인 스키장으로 향할 생각에 몸이 벌써부터 요동을 친다.

사진= 최은희 기자 Oso0@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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