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존파 사건'의 마스칸 일당과 유일한 생존자 유씨의 근황이 공개됐다.

22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지존파 살인사건의 전말이 전파를 탔다.

지존파의 타깃은 부자, 그 중에서도 '야타족'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타깃이 바로 '오렌지족'. 오렌지족은 1990년대 초 부자 부모 덕에 화려한 소비생활을 누린 20대 청년을 칭하는 말로 부분이 강남의 대학생과 유학생들이었다.

지존파의 두목 김기환은 어린 시절부터 우수한 성적을 가졌지만, 불우한 환경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막노동을 시작했다. 이러한 배경이 세상에 대한 원망으로 변하게 됐다. 악착같이 돈을 모아 자금을 마련한 지존파는 살인 예행연습에 들어갔다. 1993년 7월 새벽, 버스정류장에 있던 20대 여성을 납치 후 성폭행했다. 지존 김기환은 "사람은 이렇게 죽이는 거다"라며 실신한 여성의 목을 졸랐고, 이후 다 함께 시신을 암매장 했다. 

하지만 사건 직후 악몽에 시달리던 조직원 한 명이 탈출했고, 지존파는 그를 집단 폭행 후 살해했다. 또한 지존파는 암매장 후 개를 잡아먹기도 했다고. 재판 당시 김기환은 "하루에 개 두마리를 잡은 것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막노동으로 번 돈 2천만원을 들고 고향으로 돌아온 지존파는 아지트를 지었다. 이들은 그 곳을 '아방궁'이라 칭했다. 김기환이 직접 설계한 이 아지트의 콘셉트는 '평범을 가장한 은폐'. 아지트의 입구는 차고 안 자동차 아래에 꽁꽁 숨겨져 있었다. 그 곳에는 두 개의 빨간 문이 있었고, 한쪽 문은 지하감옥, 또 다른 빨간 문이 바로 시체 소각장이었다.

이렇듯 모든 준비가 끝난 9월 8일 새벽, 지존파는 남자 1명과 여자1명이 탄 차를 습격해 아지트로 끌고 왔다. 이 납치된 여성이 바로 '지존파 사건'의 최초 신고자 유씨였다. 남자는 그의 직장 동료 밴드마스터 박씨였다. 악기를 싣기 위해 중고로 각 그랜저를 구입 했던 것. 지존파는 범행 대상을 잘못 골랐음에도 행동대장 김현양은 박씨를 술에 취하게 한 후 유씨에게 "살고싶으면 죽여라"고 협박해 공범으로 만들었다.

이후부터 지존파는 유씨를 데리고 범행을 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 타깃은 중소기업 사장 윤씨 부부. 윤씨 부부 역시 부자가 아닌 자수성가한 '흙수저' 출신이었다. 지존파의 요구로 건넸던 8천만원 역시 회사 어음을 막기 위한 돈이었다고. 8천만원을 건넨 후 윤씨는 살려줄거라는 희망에 편지까지 작성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저도 근근히 마련한 회사이니 어엿한 중소기업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이번 15일날 돈을 막지 못하면 부도 위험이 있다. 원하는 방법대로 다 하고 또 돈을 벌면 되니까 그리 아까워하지 않겠다. 경찰에도 알리지 않겠으니 제 아내와 딸들을 해치지 않겠다고 약속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지존파는 윤씨부부 모두 총살했다. 이때 역시 김현양은 유씨를 공범으로 만들기 위해 방아쇠를 강제로 당기게 했다고.

이런 극한 상황에도 유씨는 삶의 의지를 더욱 불태웠다. 그는 협조하는 듯 행동하며 기회를 엿봤다. 특히 김현양이 유씨를 죽이지 않고 조직에 들이고 싶어했고, 이를 반대한 조직원들간에 다툼도 있었다. 유씨는 이 다툼으로 상처를 입은 김현양을 따라 병원에 간 틈을 타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

탈출한 유씨는 김현양의 휴대폰과 지갑을 이용해 렌트카를 불러 서울로 향했다. 같은 시각 지존파는 유씨를 잡기 위해 영광경찰서 앞에서 3일 동안 잠복했지만, 3일간 조용하자 지존파는 신고를 못할 거라 생각하고 아지트로 돌아갔다. 근처 경찰서가 아닌 서울로 향한 유씨의 선택이 '신의 한 수' 였던 것.

목숨을 건 탈출을 시행한 유씨는 정상참작돼 불기소 처분이 됐다. 하지만 고병천 반장에 따르면 유씨는 살인에 연루된 것이 트라우마로 남아 가정생활이 유지되지 않았으며, 몇년 후 암 선고를 받고 26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트라우마와 암 투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지존파 일당에게는 사형을 선고받았다. 선고 후 7개월 사형이 집행됐고, 지존파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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