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텀싱어3’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인물을 꼽으라고 한다면 유채훈(32)일 터다. 그에겐 대조적인 2가지 닉네임 ‘전설의 테너’ ‘비운의 테너’가 따라 다닌다.

긴 터널 같았던 무명시절을 딛고 ‘팬텀싱어’ 우승의 영예를 거머쥔 것부터 최종 결승 1차전에서 소속 팀 라포엠이 3위에 머물렀음에도 극적 반전에 성공해 최종 우승팀이 된 것 등 몇가지 사례만 봐도 단연 넘버원이다.

등장부터 ‘핫샷 데뷔’였다. 영화 ‘어바웃 타임’ 삽입곡인 ‘일 몬도’를 불렀을 때 프로듀서 김문정 음악감독을 비롯해 안방극장 1열에 자리한 시청자들을 단숨에 매료시켰다. 단아하고 준수한 외모에 어울리는 목소리엔 따뜻함과 인간미가 묻어났다. 안정적인 테크닉과 풍부한 성량이 이를 뒷받침했다. 강력한 우승 후보로 급부상했다.

유채훈은 중학교 시절 교내 밴드부에서 활동하며 가수를 꿈꿨다. 꿈을 이루기 위해 포항예고에 진학했으나 성악과만 있어 눈앞이 캄캄해졌다. 하지만 선생님이 음대에 진학하면 가수가 될 수 있다고 말해줘 열심히 성악연습에 매진, 한양대 음대 성악과에 수석 합격했다. 당시 실력이 워낙 출중해 ‘전설의 테너’라는 별며이 붙여졌다. 하지만 방학 때 틈틈이 가수 오디션을 보러 다니기도 할 만큼 ‘클래식’의 고색창연한 벽을 뛰어넘어 생동감 넘치는 ‘대중적’ 음악에 대한 열망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졸업 후 2010년부터 팝페라 그룹 에클레시아, AWESOME에서 활동했지만 큰 반향을 이끌어내진 못했다. 코러스로도 활동하고 2014년 Mnet ‘트로트X’에 출연하는 등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중간에 사기를 당하고 소속사와 계약문제 탓에 가슴앓이를 했던 사연은 ‘팬텀싱어3’를 통해 내비쳐졌다. '비운의 테너'란 레테르가 붙여진 순간이었다. 프로듀서 윤상이 “빨리 잊어버리세요”란 조언을 해주는 장면과 함께.

다양한 활동과 굴곡 많은 사연들이 자양분이 돼 이번 경연에서 폭넓은 선곡, 프로듀싱 능력, 대중과의 교감에 큰 역할을 했다.

“‘팬텀싱어3’에 참가원서를 낼 때 ‘잘하는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을 텐데 과연 내가 될까’란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이내 ‘마지막으로 도전해보자’란 각오로 접수를 했죠. 올해 유독 성악전공 참가자들이 많았는데 이제까지 자신이 해왔던 거, 공부했던 거랑 다른 길이라 두려움이 있었을 거예요. 참가해서 잃을 거를 저울질해보는 사람도 있었을 테고요. 하지만 도전해서 안됐더라도 좌절할 일은 아니라고 봐요. 참가를 놓고 고민했다는 것 자체가 마음속에 뭔가 꿈틀거리는 게 있었다는 거니까.”

유채훈은 후배 박기훈처럼 국내외 콩쿠르를 석권했고, 존노·최성훈처럼 해외 오페라 일정을 다 취소하고 나온 친구들이 있지 않느냐며 “망설임 없이 도전해보라”고 힘주어 말했다. 하지만 단순히 유명해지려고, 얼굴 알려서 조금 하다가 “나 다시 갈래”라는 마음이라면 “그냥 가던 길을 가라”고 조언하고 싶단다. ‘걸고 나오는’ 사람이 존재하는 데다 개인 경쟁이 아니라 중창팀을 결성하는 프로그램이므로 민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경연 도중 충격과 아픔을 겪기도 했다. 동갑내기인 독일 유학파 베이스 구본수가 최종 12인 선발 무대에서 탈락했을 때다. “(구)본수가 예심에 처음 나왔을 때 ‘대가 한 명이 출연했다’고 말했어요. 워낙 유명한 친구였고 실력이 탄탄했던 성악가였거든요. 그의 탈락이 많이 아쉬웠고 충격이었죠. 본수 뿐만 아니라 ‘팬텀싱어3’에서 제일 힘든 부분 중 하나가 정 들었던 동료들이 하나씩 집에 돌아갈 때였죠.”

가장 난이도 높은 ‘살 떨렸던’ 무대에 대한 질문에 사라 맥라클란의 ‘엔젤(Angel)’를 꼽았다. 구본수 박기훈과 함께 피아노 한 대를 반주 삼아 오로지 목소리만으로 승부를 걸었던 공연이었다. 프로듀서 김이나 작사가는 ‘밀양’의 송강호와 비교하며 “자신의 존재를 조연으로 낮추고 주연을 빛나게 하면서도 존재감을 잃지 않았다”고 극찬했다. 눈물이 터진 유채훈은 “이런 평가를 받기까지가 너무 오래 걸렸다. 평가받을 수 있는 무대를 얻기가 힘들었다”는 격한 감동과 복잡한 속내를 드러내 팬들의 가슴을 울렸다.

우승팀 라포엠(유채훈 박기훈 최성훈 정민성)의 리더인 유채훈은 앞으로 채워나갈 하얀색 도화지를 들고 있다. 위시리스트를 하나씩 만들어가는 중이다. 크로스오버 장르로 메인 음원차트 1위를 해보고 싶다는 목표, 왠지 이뤄질 거 같단다. 이 멤버들이라면. 다른 팀들과 더불어 주목받으며 이 시장의 파이를 키워나가고 싶다.

‘팬텀싱어3’ 참가자들 가운데 존노와 함께 가장 강력한 팬덤을 보유한 유채훈 팬들의 열성은 역대급 더위의 올여름처럼 뜨겁기 그지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출전한 유채훈처럼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비장함으로, '비운'이 아닌 '행운'의 아이콘으로 만들기 위해, 주단 깔아주기에 두팔을 걷어부치고 있다는 후문이다.

사진=최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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