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에 이어서...

오스카 캠페인은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는 전쟁터다. ‘조조 래빗’과 함께 ‘기생충’은 오스카 작품상 후보에 오른 작품들 중 가장 적은 예산으로 오스카 캠페인을 진행했다. 하지만 돈의 힘보다 영화의 영향력이 더 중요했다. 오스카 수상 전과 후에도 ‘기생충’은 전세계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는 그 파급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할리우드를 가서 봉준호 감독님과 송강호 선배님을 만났는데, 국내에서 느낀 것처럼 진짜 현지에서 다들 봉 감독님을 심할 정도로 좋아했어요. 이 분위기면 오스카 작품상을 안 주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니까요. 오스카 시상식 때 봉 감독님이 감독상을 받고 나서 작품상을 탈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죠. 작품상 수상작으로 ‘기생충’이 호명되고 제가 무대에 오를 때까지 정신적으로 힘들진 않았어요. 단지 입이 바짝 마르더라고요. 제가 한 수상 소감은 준비한 그대로였어요. 그 이상 준비한 것도 없었죠. 이 자리를 빌려 ‘기생충’에게 작품상 투표를 한 아카데미 회원들에게 감사하고 용기있는 선택을 했다고 말하고 싶어요. 리스펙! 땡큐.”

“오스카 수상과 오스카 캠페인의 효과가 타오르는 ‘기생충’에 기름을 확 부은 거 같았어요. 오스카 시즌 전부터 전세계 200여국에 영화가 팔렸고, 개봉한 나라에서는 흥행도 괜찮았죠.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효과가 먼저 있었지만 말이에요. 북미배급사 네온에서 오스카 작품상 후보만 되면 극장이 1000개 늘어난다고 하더라고요. 일부러 영국, 일본 개봉일을 오스카 시상식 때에 맞춘 것도 이런 효과를 위해서였죠. 그리고 오스카 4관왕이 되고 나선, 네온이 이제 ‘기생충’이 어디까지 갈지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오스카 수상 후 ‘기생충’이 더 인기를 얻는 걸 보면 오스카가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영화계에서 오스카 캠페인을 경험한 이는 없었다. 곽 대표 역시 오스카 캠페인은 처음이었다. 모든 게 낯설고 어색한 상황 속에서 곽 대표는 할리우드에서 ‘기생충’의 영광을 만끽했다. 스크린에서 보던 할리우드 스타들을 직접 보는 것부터 시상식 수상 순간까지. 곽 대표는 그 모든 순간을 다 기억해내기도, 다 이야기하는 것도 벅차 보였다. 그만큼 수많은 일들이 몇 개월 사이에 펼쳐진 것이었다.

“오스카 캠페인 일정 소화는 정말 힘들었어요. 문화적으로 낯설기도 했고 멍 때리기만 해도 지치더라고요. 저보단 일정을 다 챙겨야하는 실무자들이 힘들게 느껴져 안쓰러웠어요. 캠페인을 하면서 할리우드 레전드들을 만날 수 있었죠. 쿠엔틴 타란티노, 기예르모 델 토로 등 감독들을 보는 게 좋았어요. 브래드 피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잘생겼다’ 생각하고 크게 관심이 없었어요.(웃음) 아쉬운 건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과 사진 한 장 못 찍은 거였어요. 한번은 봉 감독님과 송 선배님이 노아 바움백을 가리키며 ‘노아 걔 있잖아’라고 하는데 놀라울 정도였어요.”

“개인적으로 오스카 캠페인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미국배우조합상(SAG) 때였어요. ‘기생충’ 배우들이 영화부문 앙상블상을 받는 데 기쁨이 벅차오르더라고요. 봉 감독님과 제가 목 쉴 정도로 환호했어요. 봉 감독님은 그날 오스카 캠페인하면서 가장 기쁜 표정을 지으셨죠. 영화를 위해 열심히 연기한 배우들이 값진 상을 받게 돼 기분 좋았어요. 그리고 오스카 감독상 수상부터 작품상 수상 그 사이도 잊지 못할 순간이었죠.”

‘기생충’은 한국영화 101년사에 최고 업적을 이뤄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뛰어넘을 한국영화가 탄생할까. 곽 대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든지 역사를 첫 주자가 오래 기억되고 임팩트가 가장 크지 않나. 다만 곽 대표는 ‘기생충’의 영광이 한국영화의 미래에 고스란히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기생충’을 뛰어넘는 작품이 나올 거라고 저는 생각하지 않아요. 이런 업적을 어떻게 뛰어넘을 수 있을까요. 그건 저뿐만 아니라 저와 일하는 분들에게도 가혹해요.(웃음) 봉 감독님은 20여년 동안 영화를 만들면서 오스카 작품상이라는 업적을 세웠어요. 인생을 바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죠. 저는 ‘기생충’을 만나기 전 제작자를 그만둘 생각을 했었지만, ‘기생충’을 만난 뒤 생각이 바뀌었어요. 그리고 이 업계에서 오스카 타이틀을 가진 사람이 사라지는 건 좀 아니잖아요?(웃음)”

“기자 생활을 하다가 여러 일을 거쳐 제작가 됐어요. 제가 이 일을 하고 싶은 분들에게 말해줄 수 있는 건 자유롭다는 것이에요. 제 지인들이 겪는 다른 사회생활에 비해 여자여서 받는 차별도 적고, 못하는 것도 별로 없어요. 학연, 지연, 학벌 문제도 없죠. 이 업계는 좋은 시나리오와 의견이 중요한 것 같아요. 다만 육아와 병행하기 힘들어요. 지난해 좋은 여성 감독들이 많이 나왔잖아요. 할리우드와 비교해서 한국영화계의 변화가 그리 늦은 건 아닌 것 같아요. 할리우드 영화인들에게 제가 10년 뒤에 ‘여기 한국 여성감독들이 와 있을 거다’고 농담을 하긴 했어요. ‘기생충’을 계기로 한국영화를 이끌어갈 많은 영화인들이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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