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아는 노래가 좋았다. 홍익대서 판화를 전공하면서도 음악은 놓지 않았다. 그의 인생에서는 단 한번도 음악이 빠진 적이 없었다.

홍대 클럽에서 단 2명의 관객과 함께 했던 그는 이제 '전석매진' '극찬세례'의 주인공으로 뮤지컬계의 떠오르는 디바가 됐다. 덕분에 그는 이 감사함을 잊지 않고 '무대'를 중심으로 산다. 피곤할법도 한데 그게 편하단다.

현재 매주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신도림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에서 마그리드 아르노 역으로 열연 중인 장은아가 최근 싱글리스트와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매회 무대마다 '책임감'을 갖고 임하고 있었다.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의 왕비였으나 18세기 프랑스 혁명으로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했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드라마틱한 삶과, 사회의 부조리에 관심을 갖고 혁명을 선도하는 허구의 인물 마그리드 아르노의 삶을 대조적으로 조명해 진실과 정의의 참된 의미를 깊이 있게 다룬 작품이다.

장은아는 씨야 출신 김연지와 함께 허구의 인물 '마그리드 아르노' 역을 맡았다. 마그리드는 정의란 무엇인가 끊임없이 고민하는 인물로, 시인 자크 에베르와 함께 프랑스 혁명을 일으킨데 지대한 공헌을 한 가상의 인물이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빵집을 털고, 왕비에 일침을 가하는 진취적인 여성이면서도 내면의 아픔을 가졌다.

장은아는 매회 무대에 오를 때마다 책임감을 갖고 임한다. 물론 배우로서 관객들에 좋은 공연을 보여주는 것도 있겠지만, 마그리드 캐릭터 설정값 자체가 곧 책임감이란다. "나는 사회에서 평등함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나로부터 출발했다. 사실 프랑스 혁명 전후와 현시대는 닮아있어 맞물려있다는 느낌이 크다. 너무 비슷한 상황이기 때문에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많았다. 신념이라는 것이 잘 맞아떨어졌고 흥미로웠다.

현시대에는 집회의 좋은 영향도 있지만, 냄비근성과 마녀사냥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마그리드는 혁명을 선동한 인물이기에 더욱 책임감이 있다. 그래서 마그리드를 이해시키는 것이 아니라, 극의 메시지를 마그리드를 통해 느끼게 만드는 것이 내 목표다. 그렇기에 온 우주의 힘을 모아서 집중을 한다. '마리 앙투아네트' 1막은 사건의 나열이라면 2막에서는 혁명을 위해 치닫다가 수많은 감정들로 인해 혼란스러워 결국 감정이 땅을 친다. 관객들은 나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 받기 때문에 나는 하나의 정보전달 매개체다. 그렇기에 끝나고 유독 더 많이 우는 것 같다."

감정 소모도 많고, 초집중하기에 '마리 앙투아네트' 공연은 다른 어떤 공연보다 힘들단다. 그렇기에 대기실에서 마리 앙투아네트 역의 김소현, 김소향과 힘들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며 서로를 더 배려한다. "두 분과는 누구 하나 모자랄 것 없이 치열한 케미를 나누고 있다고 생각한다. 무대에서 어머어마한 에너지를 계속 받고 있다. 그 케미가 없으면 이 공연은 망한다. 나한테 있어서는 여태까지 공연을 통틀어 최고의 상대 배우들이라 생각한다. 여자 배우랑 가까이 연기하는 게 처음이다. 여성 투톱 공연도 많이 없다. 제일 무서운 게 능력있는 사람이 노력하고 구력까지 더해졌을 때다. 아마 두 분이 아닌가 싶다. 내가 그 힘으로 공연하는 것 같다."

반면 김연지에는 애틋함이 더 크다. 노래를 하고 싶었지만 그에게 주어진 무대는 홍대 한 클럽의 관객 2명이었다. 그 마저도 사장과 종업원이었단다. "오랫동안 힘들어하다가 뮤지컬 '광화문연가' 일본 공연으로 데뷔했다. 그때 안무가 있었는데 정말 총체적 난국이었다. 연지를 보면 데뷔 시절 내 모습이 많이 생각난다. 근데 매회 너무 큰 발전을 해서 놀랍다. 모르면 다 물어보더라. 안 도와줄 수 없다. 나는 그때 끌어줬던 선배가 없었는데 내가 그런 선배이고 싶었다. 

가수들이 뮤지컬을 하면 편견을 견뎌야 한다. '물 흐린다'는 이야기는 듣기 싫다. 무대에 대한 간절함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같이 하고 싶었다. 넘어왔다면 가벼워선 안 된다. 연지는 간절함이 느껴진다. 그녀의 간절한 부르짖음이 관객들에 전달되는 것 같아 뿌듯하다."

사실 '마리 앙투아네트' 전 장은아는 딜레마에 빠졌었단다. 그때 만난 게 '엑스칼리버'의 모르가나였다. 그리고 마그리드로 비로소 자유로워졌다. "작품을 하다 보면 배우들도 후기를 볼 때가 있고 본인이 만족스러운 것들이 있다. 배우로서 딜레마에 빠졌을 때 모르가나를 만났고, 거기서 뜨거운 호응을 주셔서 감사하다. 또 마그리드를 통해 공감하고 눈물을 많이 흘려주시니 많이 느껴진다. 여태까지 작품 중 제일 자유롭게 움직이고, 자유롭게 하고 있는 것 같다. '엑스칼리버'에서 활활 불이 타올랐다면 잠시 식히고 '마리 앙투아네트'로 융통성 있게 활보하고 있는 느낌이다. 배우로서 그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다."

장은아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먹는 것과 여행이다. 쉬는 날은 주로 '맛집 탐방'을 한단다. "한동안 SNS에 맛집을 엄청 올렸다. 동료 배우들이 이태원 어디 맛집이 있냐고 물을 정도다. (웃음). 누군가는 먹는 것 말고 하는 것이 없냐고 할 정도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좋아한다. 가끔 영화도 보러 간다. 시간이 더 길게 주어지면 여행을 가지만 올해는 작품이 연달아 있어 어려운 것 같다. 그래도 지금 이 상황이 감사하기만 하다."

지금은 무대를 누비는 디바가 됐지만 그에게는 독특한 이력이 있다. 홍익대학교 판화과를 졸업한 것이다. 하지만 미술을 할 때도 장은아는 '음악을 그렸다'. "어릴 때 피아노 치다가 너무 치기 싫어서 미술학원에 보내달라고 했다. 산만해서 한 시간 이상 못 앉아있었는데 미술 하면서 4시간 이상 앉아있게 됐다. 재능도 있었고 열심히 했다. 근데 노래하고 싶은 불씨는 꺼지지 않더라. 늘 방안에서 혼자 음악을 틀어놓고 맨날 노래를 불렀다. 

자연스럽게 미술을 전공하게 됐다. 대학 때 웃긴 이미지였다. 1학년 때 가요제에 나갔는데 금상을 탔다. 학교가 난리가 났었다.(웃음) 그 이후로 미술 하면서도 음악을 했다. 장학금 받으면서도 오디션도 보러 다녔다. 그래서 러브홀릭스 객원 멤버로 '국가대표' OST에 참여했다. 그 이후로는 회사 나와서 개인적으로 작업했다. 그림으로는 돈을 벌었다. 대학원 조교 하면서 '보이스코리아'에 나가게 됐다." 

얼마 전 대학교 때 작품을 봤다는 장은아. "죄다 음악에 대한 그림이었다. 제일 웃긴데 한쪽에는 마이크, 한쪽에는 붓을 들고 있더라. 계속 음악을 그렸던 거다. 대학원 와서도 그림에는 음표나 스피커가 빠지지 않았다. 러브홀릭스 객원멤버로 참여했을 때는 앨범 표지도 참여했다. 음악에 대한 그림이 많으니까 당시 대표님이 그걸 씨디에 넣기도 했다. 

나는 그림을 그리면서 나를 표현하지 않았을 뿐이지, 손으로는 음악을 하고 있었다. 그 정도로 음악이 하고 싶었나 보다. 그게 상호작용이 된 것 같다. 음악으로 일이 없으면, 미술로 치유를 받았다. 나는 음악을 택했다. 그런 미술적인 영감들이 없었다면 이런 예민함을 갖지 못했을 것 같다."

 

사진=EMK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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