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피아니즘에 유니크한 해석으로 정평이 난 피아니스트 임동민이 8년 만에 신보를 내놓는가 하면 전국투어 리사이틀에 나선다. 2019년 하반기를 빠르게 타건하는 '쇼팽 스페셜리스트'를 10월 초 잠실 석촌호수 인근 연습실에서 만났다.

적당히 주름 간 하얀 드레스셔츠를 입은 채 미소짓는 모습이 한층 여유롭고 편안해 보인다. 2011년 쇼팽 음반 이후 오랜 시간이 흘러 소니뮤직을 통해 3집 ‘쇼팽&슈만’을 지난달 20일 발매했다. 슈만 ‘어린이 정경’과 쇼팽 ‘스케르초’ 1~4번을 담았다. 섬세한 연주와 개성 있는 해석이 두드러지는 이번 음반 레코딩은 지난 7월 JCC 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3일에 걸쳐 이뤄졌다.

임동민은 “쇼팽과 슈만은 음악적인 캐릭터에 있어서 많이 대조된다. 쇼팽 ‘스케르초’는 훨씬 화려하며 이펙트가 있는 편이고, 슈만은 클라라에 대한 사랑, 어린이의 세계를 순수하고도 심오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런 대비를 한 앨범에서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쇼팽 스케르조 4개는 이미 구상하고 있었다. 쇼팽콩쿠르 입상자라면 발매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피아니스트들에게 있어 쇼팽의 곡은 많이 좋아하고 즐겨 사용하는 레퍼토리다. 청중과 교감하기 쉬운 곡들이기 때문이다. 슈만의 경우 외국에선 ‘어린이 정경’이나 ‘다비드 동맹 무곡집’ ‘카니발’을 주로 연주한다. 개인적으로 내적인 면이라든가 순수함으로 인해 슈만을 좋아했고 어렸을 때부터 전설적인 러시아 피아니스트 호로비츠가 연주하는 ‘트로이메라이’를 많이 봐와서 동경했다. 쇼팽은 화려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반면 슈만은 좀더 내적이고 순수한 면에서 대조를 이룬다.”

특히 그의 쇼팽 표현이 어떻게 달라졌을 지에 관심이 쏠린다. 임동민은 “지금까지 음악적인 면뿐만 아니라 인생이나 사회적인 면에서도 다양한 변화가 있었다. 2005년 쇼팽 콩쿠르에 참여했을 때는 열정과 감성에 충실했다. 지금은 쇼팽의 절제미나 섬세한 면모, 지적인 요소를 생각하며 연주한다”고 전했다.

“젊었을 때는 쇼팽 콩쿠르 참가를 시작으로 쇼팽을 많이 접했다. 당시엔 불같이 열정적으로, 감성적으로 열심히 건반을 두드렸다. 나이가 먹어가면서 사회를 접하고 여러 선생님과 유럽에서 공부하면서 그런 면만 있는 게 아니다를 깨달았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또 과거의 열정이 되살아나는게 아닌가 싶다. 나의 트레이드마크는 감동이었고, 쇼팽을 어떻게 할까 연구하다보니 섬세하고 지적인게 낫겠다, 절제하는게 낫겠다 싶었는데 역시나 한국 청중은 뜨거운 걸 선호한다는 걸 깨닫게 됐다. 쇼팽의 스케르초 공부하면서 그런 열정으로 다시 돌아온 듯하다. 이번 나의 쇼팽 키워드는 강함과 화려함이다.”

요즘엔 음반을 잘 안듣는 편이긴 한데 그가 꼽는 쇼팽 연주 원픽은 루빈스타인이다. 호로비츠, 코르톡, 짐머만, 폴리니, 아르헤리치 등 수많은 명 연주자들의 쇼팽 명반이 있으나 ‘쇼팽은 기본적으로 루빈스타인이 정석’이라는 게 임동민의 평가다.

임동민은 선화예술중학교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에서 수학 도중 1994년 러시아로 이주, 명문 모스크바 국립음악원과 독일 하노버 음악대학에서 레프 나우모프, 말리닌, 크라이네프 교수를 사사했다.

1996년 국제 영 쇼팽 콩쿠르 1위를 시작으로 이탈리아 비오티 국제 콩쿠르 3위, 부조니 콩쿠르 3위, 차이콥스키 콩쿠르 5위, 프라하 봄 국제 콩쿠르 2위 등 세계 콩쿠르를 석권하며 실력을 인정받았고, 2005년 한국인 최초로 쇼팽 국제 콩쿠르 3위에 올라 또 한번 그 명성을 세계 무대에 과시했다. 한국인 연주자 처음으로 차이콥스키 콩쿠르, 쇼팽 콩쿠르를 동시에 입상한 피아니스트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음반 발매를 기념해 전국 6대도시 투어를 진행한다. 오는 28일 오후 8시 서울 롯데콘서트홀 무대를 시작으로 11월 15일 오후 7시30분 광주 유스퀘어문화관 금호아트홀, 11월 17일 오후 5시 고양 아람누리 아람음악당, 21일 오후 7시30분 대구 수성 아트피아 용지홀, 12월 12일 오후 7시30분 인천 엘림아트센터 엘림홀, 12월 14일 오후 5시 통영 국제음악당으로 이어진다.

“2년 전에 리사이틀 하려고 했는데 개인적인 사생활 문제로 늦춰지게 됐다. 작년부터 리사이틀을 준비하려고 프로그램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협연 등은 해왔으나 큰 규모로 독주회를 한 게 8년만이라 긴장이 많이 된다. 음반 발표를 하자마자 투어에 돌입했어야 했는데 쇼케이스와 기자회견 등 일정으로 인해 텀이 생겼다.”

올해로 불혹을 맞았다. 그간의 경험이 연주에도 투영이 될 수밖에 없을 터. 좋은 연주자란 무엇일지에 대해 물었다.

“아티스트들도 여러 부류가 있는 듯하다. 호로비츠는 와이프가 이탈리아 출신의 미국 지휘자 토스카니니의 딸이라 어마어마한 서포트를 받았는데 그분도 심지어 세 번의 공백기 있었다. 제일 길었던게 12년이다. 반 클라이번은 40대에 아예 연주를 접고 60대에 컴백했다. 꾸준히 활동하는 사람도 있고, 20대에 반짝였다가 사라지는 사람도 있다. 개인적으로 몇 년간 안좋은 일들이 겹쳐서 활동이 활발하지 못했는데 나는 꾸준히 갔으면 한다. 평생 연습하고 연주하면서.”

인터뷰 도중 툭 튀어나돈 말이 이채로우면서 의미심장했다. “이번 앨범을 통해서 피아니스트로서 죽지 않았다는 것을 관계자, 대중에게 보여줄 수 있을거 같다”는 그는 “향후 국내에서 연주회를 꾸준히 하려 한다. 한창 클래식 음악 붐이 불타오르고 있는 중국에서도 공연을 구상하고 있다. 마흔이 되니까 깨닫는 건 많은데 젊음이 사라져서인지 몸이 힘들고. 예전보다 힘들다. 와인과 코냑을 좋아했는데 음악활동 때문에 6개월째 금주하고 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 등이 그의 뒤를 이어 쇼팽콩쿠르 우승을 차지하는 등 괄목할 만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그는 “세상이 많이 바뀌어서 후배들이 한국인으로서 많은 성과를 낸다는 게 신기하다. 우리나라는 클래식 음악에 대한 지원이 전무하다시피 함에도. 조성진은 나와 동일한 패턴을 그려 특이하더라. 국제 영 쇼팽콩쿠르에서 1위하고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나갔다가 쇼팽 콩쿠르에 참가했으니.”

마지막 질문으로 동생인 피아니스트 임동혁과 협연 계획은 없는지를 물었다. 심플한 대답이 돌아왔다. “소속 기획사에서 우리 둘이 협연하는 걸 별루 원치 않아서 힘들거 같다”.

사진=지중근(라운드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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