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고 편안한 곳에서 누리는 쉼. 하루하루 험난한 세상살이를 치러내는 이들 각자의 마음에 품은 기대치를 충족시키기에 10월의 제주만한 곳이 있을까? 바람결도 햇살도 한껏 부드러워진 가을날의 제주, 조금은 부족하고 느슨해도 ‘괜찮다, 괜찮다’ 다독여줄 이 섬의 아늑한 품에 가만히 안겨보자.

■ 너른 들에 엉킨 마음 풀어내며, 안덕면 대평리

한자로 대평(大坪)이라 쓰는 이 마을은 제주어로 난드르, ‘너른 들’이다. 안덕면 마을 중 가장 작지만 음식점과 숙박시설이 많은 것은 중문 관광단지에서 10분 거리로, 번잡함을 피하려는 여행객들에게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동해용왕 아들의 전설이 깃든 박수기정은 이 마을의 명물이다. 거대한 병풍처럼 둘러친 해안절벽은 무려 100미터에 달하는 높이로 압도하는가 하면, 노을 걸린 저녁 하늘이 나를 향해 쏟아지는 감동 또한 진하고 묵직하다. 우거진 소나무 길을 따라 박수기정 정상에 오르면 마을과 대평 포구, 산방산을 조망할 수 있고 형제섬과 마라도, 가파도까지 보인다. 

 

■ 양산 아래 아늑한 자연의 품, 개오름

다소 투박한 이름으로 손해를 본 케이스가 아닐까. 개와 연관 있다는 설에 대해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개오름은 한자 蓋(덮을 개)를 차용해 밥그릇 뚜껑 혹은 양산 모양이라는 설에 더 무게가 실린다. 분화구가 없는 원추형의 오름은 남북으로 다소 펑퍼짐한 모양새로 오르기에 크게 어렵지 않고 삼나무와 편백나무의 응원을 받으며 야자수 매트를 따라 20분 정도면 정상에 도착한다.

비치미 오름과 영주산 사이에 자리 잡아 유명세에서 조금 밀릴지 몰라도 성읍 저수지를 비롯해 영주산과 안돌오름 등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구좌, 성읍, 가시리 권역의 여러 오름들을 마주하는 순간, 미처 알지 못했던 매력이 한꺼번에 분출될 지도 모른다. 오름으로 향할 때 마을 안길과 목장을 지나게 되는데 낯선 이의 방문에도 익숙한 듯 무심한 말들과의 조우도 따뜻한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 울긋불긋 색깔 입은 제주의 시간, 가을 제주의 단풍길-억새길

국내에서 가장 늦게까지 단풍을 감상할 수 있는 제주의 단풍 명소는 역시 한라산이다. 모든 등반 코스가 아름답지만 등반 초보자에게는 영실코스가 적격이다. 코스가 비교적 짧고 걷기 쉬운 대신 정상 등반은 불가능하니 사전 확인을 요한다.

영실탐방로 대신 존자암지 가는 길을 택해도 왕복 40분의 황홀한 눈 호강이 가능하다. 여기에 1100고지나 516도로, 1100로 중 천왕사 가는 길은 차를 타고 단풍을 감상할 수 있어 제주에서의 추억에 색을 더한다. 단풍과는 또 다른 매력 품은 억새는 어떨까. 서귀포 동부의 중산간, 금백조로는 넘실거리는 은빛 억새 뒤로 풍력발전기가 돌아가고 조천읍 닭머르 해안에서는 억새와 바다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 더 자연스러운, 더 즐거운 친환경여행, 2019 하반기 에코파티

이제 여행의 대세는 생태&공정여행이다. 마을 사람들이 전하는 옛 이야기와 곶자왈 안내, 문화공연, 지역 특색을 담아낸 만들기와 음식. 사람과 자연, 문화가 어우러지는 에코파티가 해를 거듭할수록 사랑받으며 올 상반기를 다채롭게 채웠다. 이어지는 하반기 에코파티에도 제주가 그득한데 10월에는 9개 마을이 8번의 에코파티를 연다.

곶자왈 마을 선흘리에서 습지와 곶자왈을 오감으로 느낀다면 신들의 고향 송당에서는 오름과 메밀밭을 작품으로 만들어 본다. 어멍아방 잔치마을 신풍리에서 집줄놓기와 염색체험이 마련되고 저지리에선 새소리 피리를 불며 오름 트레킹에 도전한다. 이 밖에도 조랑말 마을 가시리에 동백마을 신흥, 항몽 유적지 옆 유수암과 바다마을 세화&평대까지. 마을마다 프로그램은 달라도 로컬푸드 체험은 기본 장착. 참가 인원과 비용이 다르므로 일정을 살펴 미리미리 예약해두자.

■ 풍성한 계절의 한가운데 축제도 풍년, 제주 10월 축제들

풍성한 계절의 정점에 즐길 거리 가득한 축제도 풍성하다. 제주의 10월을 빼곡하게 채우는 축제만 따라가도 제주여행에서 얻을 추억거리는 충분할 것이다. 지역 특색을 살린 로컬 푸드와 요리경연, 유명 셰프 초청 시연과 축하무대가 있는 음식박람회부터 자연과 사람이 탐나는 제주문화를 자랑하는 도심 속 민속축제 탐라문화제, 올레 8코스~ 10코스 약천사에서 논짓물까지 다양하다. 

제주 서남부의 아름다운 풍광을 벗 삼아 조용히 스스로를 다독이는 올레걷기 축제도 있고 천제연 폭포 전설을 테마로 한 칠선녀 축제, 과거 말을 방목하던 고마장에서 지금은 도심이 된 고마로의 마문화 축제... 취향 따라 형편 따라 제주를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축제가 나를 기다린다.

 

■ 나를 내려놓고, 나를 찾다...도내 순례길들 + 템플스테이

활력 충전을 위해 떠나는 여행도 있지만 쌓인 스트레스와 긴장을 씻어내고 잃어버린 나를 찾아가는 여행도 있다. 왁자지껄하고 화려한 관광지보다 조용히 나를 돌아보고 위로하고 싶다면 순례길은 어떨까. 멀리 산티아고까지 갈 필요 없이 제주면 충분하다.

천주교와 기독교 불교까지 3대 종교에서는 제주에 각각 5개~6개의 순례길 코스를 완성하고 마음의 평화와 지혜를 찾는 이들을 맞이한다. 어느 계절에 걸어도 좋은 이 길에 10월의 가을빛을 더하면 더없이 풍성한 감동이 텅 빈 마음도 이내 가득 찬다.

특히 관음사와 약천사를 비롯한 도내 4개 사찰에서는 천혜의 자연환경 안에서 불교문화를 체험하고 참선과 다도 등 다양한 경험으로 나를 일으켜 세우는 템플스테이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 비밀명소 대공개, 내 안의 모험심 대방출...진곶내, 도리빨

나만 알고 싶은 곳, 알려지지 말았으면 하는 비밀스러운 명소들이 있다.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 언젠가는 알려질, 그러나 아직은 희귀한 제주도의 명소를 찾아 내 안에 숨겨둔 모험심을 끌어올려보자. 외계 행성을 연상시키는 기괴한 바위 병풍 사이로 바다와 몽돌이 펼쳐지고 그 가운데 우뚝 솟은 바위에 올라 세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진곶내’.

이 숨겨진 작은 해변은 체력과 모험심을 겸비한 어른들에게 적당하다. 심한 경사에 계곡을 걸어야 하므로 날씨와 물때를 고려하는 게 좋다. 서귀포 중문 단지 축구장에 차를 세우고 옆길로 들어 갈림길을 만나면 아는 사람만 안다는 해변 ‘도리빨’이 나온다. 한적한 바다에서 스노클링을 즐기려는 이들이 소중하게 간직해 온 이 비밀의 명소 역시 공유화까지 그리 오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덜 알려진 만큼 안내는 부족한 편이니 출발 전 정확한 위치를 확인해야 더 즐거운 모험이 가능하다.

 

■ 글향기 품은 책공간...김영수도서관과 작은 도서관, 2019 책축제

1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제주북초등학교. 20회 졸업생 김영수 동문이 기증한 학교 도서관이 원도심 도시재생 프로그램으로 새로 태어났다. 고즈넉한 한옥 건물에 책 읽기와 토론이 가능한 아기자기한 방과 목관아가 훤히 보이는 2층 서가를 갖추고 학생들과 주민의 가슴에 글 꽃을 피워낸다.

학기 중 낮 시간에는 학생들에게, 평일 5시 이후와 주말 오전부터 모두에게 열린 문화사랑방이 된다. 그런가 하면 도내 곳곳 작은 도서관들이 공공 도서관의 부족함을 채운다. 조천읍 푸른 열매 작은도서관과 서귀포 동홍동의 퐁낭 작은도서관도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가족음악회와 영화 상영회, 북 콘서트가 열리고 시 쓰기 교실에서 아이들이 쓴 시가 시집으로 태어난다. 여기에 도내 공공 도서관과 도서연구회, 국어교육연구회 등이 함께하는 책 축제 ‘책들의 가을 소풍’에서는 각종 강연과 공연, 체험 및 책 교환 마당이 마련된다.

■ 문화에너지 충전소, 서귀포 관광극장 + 제주아트센터

영화 상영부터 초등학교 학예회, 면민 단합대회 등 1960년대 서귀포 최초의 극장이자 각종 문화행사의 장이던 서귀포 관광극장. 20세기 말 이후 방치되었던 이곳이 십여 년 만에 활기를 되찾았다.

뻥 뚫린 지붕처럼 누구에게나 열린 문화공간으로 주말에는 공연 위주, 평일엔 예술 강좌 등 각종 프로그램이 운영되며 허름한 외관에 기대 없이 왔다가 감탄하고 간다. 그런가 하면 무려 1100여 석에 첨단 무대장치를 갖춘 제주아트센터는 아이들을 위한 클래식공연에서 연극제, 교향악단과 대중가수의 무대까지 다양한 장르를 두루두루 선보인다.

수준 높은 초대 공연으로 눈높이는 높이되 착한 관람료로 문화예술에 대한 문턱을 낮춘 것도 의미 있다. 도민들은 물론 바쁜 일상을 탈출한 여행객에게도 여유와 감동을 전한다.

■ 후후 불어 후루룩, 입가엔 만족감 호호...따뜻한 면

찬바람이 불어오면 뜨끈하고 진한 국물이 그리워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여기에 쫄깃한 면발이 곁들여지면 금상첨화다. 제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재료가 면 요리에도 찾아들었다.

배지근한(맛이 묵직하고 진하며 감칠맛이 있다는 의미) 몸국에 면을 넣은 ‘몰망국수’와 딱새우부터 성게알, 꽃게까지 바다가 몽땅 들어간 ‘바릇국수’. 고기국수와 비빔국수에는 흑돼지가 들어가 맛에 제주다움을 더하고 달콤하고 진한 팥 국물에 들어앉은 칼국수 면은 살짝 뿌린 설탕과 곁들이는 김치 덕분에 단짠단짠의 정석을 갖춘 팥칼국수가 된다.

떨어진 기온만큼 몸의 기운마저 떨어지기 쉬운 이 가을, 건강과 입맛 책임지고 마음마저 데워줄 따뜻한 면의 다양한 매력으로 취향 존중과 입맛 저격까지 일석이조다.

 

사진=제주관광공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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